막다른 ‘늑장 인사’… 폭발 민심은 그대로

입력 2016-10-30 21:32
각종 의혹으로 사퇴 압박을 받아온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왼쪽)과 안종범 정책조정수석이 30일 전격 경질됐다. 우 수석 후임엔 최재경 전 인천지검장이 발탁됐지만 정책조정수석은 추후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일보DB

박근혜 대통령이 30일 청와대 우병우 민정수석, 안종범 정책조정수석과 측근 비서관 3명을 전격 교체한 것은 일단 최악의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아보자는 시도다. ‘대통령 하야(下野)’까지 요구하는 성난 민심 수습용이지만 국민 여론에 떠밀리듯 이뤄진 ‘늑장 교체’로 여론을 다독이기는 여전히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취임 이후 계속 불통(不通) 지적을 받아온 박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 변화 없이는 인적 쇄신 역시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박 대통령의 청와대 수석 교체는 오후 5시쯤 전격 발표됐다.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 10명 전원에게 사표 제출을 지시한 지 이틀, 사표 제출이 이뤄진 지 하루 만이다. 일단 ‘최순실 게이트’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청와대 참모들이 교체 대상이 됐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우 수석 및 측근 3인방 경질 요구가 거셌음에도 “의혹만으로 비서를 내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결국 최대 위기까지 몰린 상황에서야 교체에 나선 것이다. 이 비서실장은 임명 5개월 만에, 김재원 정무수석은 4개월 만에 교체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표를 일괄 제출했던 수석 10명 중 4명 교체 배경에 대해 “국정공백 등 여러 상황이 감안된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후임이 정해지지 않은 청와대 비서실장, 수석 등 인선을 마무리한 뒤 내각 개편에 나설 예정이다. 황교안 총리 교체 시기 역시 정치권이 요구 중인 ‘책임총리제’ 등 논의 방향과 맞물려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총리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방식의 책임총리제도 숙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책임총리제와 거국중립내각 문제는 권력 구조를 개편하는 것인 데다 여야의 정치적 셈법도 매우 달라 실제 현실화되기까지는 장고(長考)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청와대 및 내각 개편에 이은 추가 수습책으로 박 대통령의 사과 또는 대국민 담화 등 역시 유력한 후속조치로 거론된다.

박 대통령은 전날 원로자문 모임인 7인회 멤버 등이 포함된 새누리당 상임고문단 회동에 이어 이날 오후엔 청와대에서 조순 전 서울시장과 고건 전 국무총리, 이홍구 전 국무총리 등 시민사회 원로 10여명과 비공개 면담을 하고 조언을 들었다. 향후 대책을 ‘다각적인 방향에서 고심한다’는 게 박 대통령 구상이지만 단편적인 인적 쇄신만으로는 이번 사태를 극복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지금까지 제기된 여러 제언 등에 대해 고심하고 있고, 조만간 구상이 구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철저한 진상규명인 만큼 박 대통령이 직접 최순실씨 관련 의혹에 대해 철저한 수사를 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압수수색 등 검찰 수사에 한동안 비협조적으로 나선 청와대가 과연 진상규명 의지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야권은 청와대 개편에 ‘만시지탄’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국정농단’ 책임자에 대한 철저한 처벌을 주문했다. 민주당 윤관석 수석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오늘 인사 개편은 만시지탄 교체”라며 “단순 교체에 그쳐서는 안 되고 위법사항이 있는 인사는 철저히 책임을 물어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BBK사건 수사를 맡았던 최재경 민정수석 내정자는 ‘우병우 시즌2’ 역할을 해선 안 된다”며 “혹시라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수습용 인선이 아닌지 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손금주 수석대변인은 “청와대가 후임 민정수석에 또 다른 정치검사를 임명했다”고 비판했다. 새누리당 김성원 대변인은 “핵심 인사들에 대해 단행된 조치인 만큼 조속한 진상규명과 수습이 이뤄지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남혁상 전웅빈 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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