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30일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청와대에 전격 요청한 것은 사실상 ‘뇌사 상태’에 빠진 청와대는 국정운영 2선으로 물러나라는 요구나 다름없다. 여야가 합의한 새 총리를 중심으로 내각을 다시 정비해야 한다는 정치권 일각의 주장을 여당 지도부가 받아들인 것이다. 국민적 분노가 여권 전반으로 확대되기 전 정국을 수습하려면 어떤 극약처방이라도 내놔야 한다는 절박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국내외적으로 엄중한 경제·안보 상황 등을 고려하면 여야가 거국내각 구성을 논의하는 동안 발생할 국정운영 공백을 방치할 여유가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당초 거국내각 구성 구상에 적극적이었던 야권 역시 ‘최순실씨 국정농단 의혹 규명이 먼저’라며 논의 참여에 미지근한 반응이다. 이에 따라 ‘책임총리제’를 우선 구현하고, 여야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내각을 꾸리는 절충안도 떠오른다.
거국내각 구성의 핵심은 여야가 동의한 인물로 총리를 세우는 것이다. 거국내각 구성 논의는 인사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책임총리제’를 바탕으로, 여야가 협의해 내각 구성에 관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상의 연립정부 형태로 정국을 이끌어가는 방식이다.
정치권에선 새 총리 후보로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 대표, 고건·김황식 전 총리,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등의 이름이 오르내린다.
비주류 대권 잠룡인 남경필 경기지사는 “정파를 넘어서는 협치형 총리가 필요하다”며 김 전 대표를 추천했다. 파격적 인사로 꼽히는 손 전 상임고문은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출신으로, 최근 무소속 상태로 정계 복귀를 선언했다. 김 전 대표나 손 전 상임고문은 모두 야권 성향인 데다 ‘제3지대’론을 주장한 인물이어서 차기 총리가 성사될 경우 정계개편 시나리오도 힘을 받을 여지가 크다. 특히 둘 모두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한 개헌론자여서 청와대를 배제한 개헌논의가 탄력을 받을 가능성도 높다. 이들이 책임총리를 실현하면서 내치를 실질적으로 담당할 경우 ‘개헌 시나리오’ 실험도 가능하다.
고건·김황식 전 총리,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등은 안정적인 국정운영 면에서 주목받고 있다. 고 전 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총리로, 대통령 권한대행을 역임했었다. 김 전 총리는 호남 출신으로 대법관과 감사원장을 지냈고, 이명박정부 임기 말 총리를 맡았을 때도 긍정 평가를 받았다. 다만 이들은 정국 쇄신보다는 ‘관리형 총리’에 가까워 전면적인 국정 드라이브 역할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거국중립내각이 구성될 경우 부처 간 정책 통일성을 이루기 어렵고, 정책의 책임 소재 역시 불분명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야당이 논의에서 소극적일 경우 실현 자체가 불가능하다.
전웅빈 기자 imung@kmib.co.kr
‘뇌사’ 靑은 2선으로 빠져라… 난국 수습 극약처방
입력 2016-10-31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