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처럼… 부끄러운 마음으로 죄와 싸워야”

입력 2016-10-30 21:20
최순실 국정 농단과 관련돼 기독교인들의 분노가 이어지는 가운데 28일 서울 광진구 장로회신학대 채플실 앞 미스바 광장에서 장신대 학생들이 시국선언을 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최순실 국정농단이 전 국민을 충격과 분노에 빠뜨린 가운데 한국교회가 30일 종교개혁 499주년 기념주일을 맞았다. 사이비교주 최태민 일가에 의해 능욕 당한 국정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과 예언자적인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성경에서 예언자(豫言者)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豫)’ 사람이라는 점에서 시대를 향한 주님의 경고를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종교개혁 기념주일, 불의 꾸짖어야=청파감리교회 김기석 목사는 이날 ‘거룩함을 향한 순례(롬 6:17∼23)’란 제목의 설교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소위 최순실 게이트 논란으로 참담한 상태다. 더욱 불쾌한 것은 사이비 영성과 관계된 이로부터 조종당한 것”이라며 “그러나 ‘순실’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누구인지, 믿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 불의를 꾸짖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라 했건만 오늘날 교회는 그 몸을 불의에 바쳤고 불의를 꾸짖지도 못하게 됐다”며 “진정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면 그리스도를 마음에 품고 세상에 평화의 씨앗을 심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는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할 죄’(롬 6:12∼14)란 설교에서 “청와대에서 일어난 일들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청와대 안에 예수 믿는 이들도 많을 것이며, 이 나라에 예수 믿는 이들이 이렇게 많은데 그런 일이 일어날 동안 다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알 수 없다”며 “국가가 이렇게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에 놓인 가운데 교회가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기독교인들이 부끄러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피흘리기까지 치열하게 죄와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룩한빛광성교회 정성진 목사도 ‘종교개혁을 신앙개혁으로’(대하 31:1∼21)라는 설교에서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종교개혁의 표어는 지금도 유효하다”며 “구약시대 히스기야 왕이 우상을 파괴하고 말씀대로 살아갈 것을 명했던 것처럼 신자들은 오직 성경만이 유일한 표준임을 알고 말씀을 읽고 듣고 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학생 시국선언, 촛불집회 참여 잇따라=‘최순실 사태’에 대한 분노를 담은 성명서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대통령 하야 요구 그리스도인 성명’은 서명 이틀만인 29일 밤 10시까지 2812명의 크리스천의 서명을 받았다. 이 성명은 “박근혜 정권이 앞으로 유지되는 날의 수만큼 대한민국은 위험하다. 나라의 주권이 양도될 수 없듯이, 대통령의 권한은 그 어떤 사인에게도 맡겨질 수 없다”고 밝혔다.

크리스천들은 이날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개최된 촛불집회에도 참여해 분노를 표출했다. 11세 아들과 함께 참여한 강정숙(46·여)씨는 “국정 운영 파탄의 핵심은 사이비 교주의 딸 최순실에게 휘둘린 대통령에게 있다”며 “이는 성경이 말하는 공평과 정의가 아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참여했다”고 말했다. 김병석(34)씨도 “지금은 기도와 행동을 함께해야 할 때”라며 “불의한 위정자의 권력은 마땅히 거부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학대생들도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이번 사태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을 잇따라 발표했다. 장로회신학대 학생들은 28일 서울 광진구 광장로 장신대 미스바광장에서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잠 15:3)’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펼쳐두고 시국선언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기미 독립선언문을 발표한 지 97년 만에 대한민국이 무너졌다”며 이번 사태를 개탄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는 직무의 책임감을 상실한 채 민감한 국정 사안에 최순실을 개입시켜 국민으로부터 받은 권한을 넘겨주었다”며 “국민으로부터 받은 신뢰를 배반했다”고 비판했다.

총신대·감리교신학대·서울신대 총학생회도 지난 27일 공동으로 ‘결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국가의 중요한 인사, 외교, 안보, 남북관계, 심지어 국방문제에 대한 내용이 한 개인에게 넘어가 수정됐다는 사실은 헌정 역사상 최악의 국기문란이자 국정농단”이라고 규정하며 “대통령을 비롯해 이와 관련된 책임자들에 대해 성역 없는 철저한 특검 수사와 처벌을 실시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요구했다.

라영환 총신대(조직신학) 교수는 “지금 기독교인들은 선지자로서 대통령을 위시한 위정자들의 죄를 지적하는 게 우선이다. 그 다음의 구체적 조치는 정치가들의 몫”이라며 “구약 시대에서도 불의한 아합 왕을 향해 엘리야와 엘리사, 미가야 선지자는 직언과 경고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신상목 이용상 이사야 기자 smshin@kmib.co.kr, 사진=강민석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