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최순실씨 개입 의혹이 불거진 미르·K스포츠재단뿐 아니라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정부 주도로 만들어진 각종 재단과 펀드에는 늘 대기업이 반강제로 동원됐다. 당장 눈에 띄는 몇몇 재단이나 센터에만 2200억원 가까운 기업 돈이 들어갔다. 여기에 현재 전국 곳곳에서 운영 중인 창조경제혁신센터에 17개 기업이 투자·융자 보증 형태로 지원한 7227억원까지 포함하면 금액은 크게 늘어난다. 따라서 현 정부가 약점이 많은 기업의 팔을 비틀어 준조세를 징수하는 행태를 습관적으로 반복해온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30일 더불어민주당이 집계한 ‘박근혜정부 권력형 재단 설립 및 모금현황’을 보면 현 정부 들어서 총 6개 재단과 펀드 등에 2164억원의 기부금 및 출연금이 모였다.
우선 최순실씨 비리 의혹이 제기된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는 삼성 현대차 등 굴지의 대기업 16곳으로부터 각각 486억원과 288억원이 모금됐다.
현재 가장 액수가 많은 것은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이 1호 기부자로 나선 청년희망펀드로 모금액은 총 880억원이다. 대통령의 기부를 시작으로 각 기업과 그룹이 줄지어 이를 따랐다. 삼성전자는 250억원, 현대차는 200억원을 냈으며 LG, SK그룹이 각 100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또 이 펀드를 수탁 중인 13개 은행 직원이 전체 기부자의 52%를 차지한 것으로 드러나 강제할당 논란이 일고 있다.
청년희망펀드는 발상 자체부터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정부가 예산을 통해 해법을 마련해야 할 청년 고용문제를 국민 모금으로 해결하겠다는 것 자체가 엉뚱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법적 제재 대신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모은 사례도 있다. 중소상공인희망재단(100억원)과 한국인터넷광고재단(200억원)에 들어간 출연금은 포털사 네이버의 돈이다. 네이버는 2014년 시장 지배적 지위행위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를 받지 않는 대신 1000억원의 상생기금을 출연하기로 했다. 이들 재단의 출연금은 여기서 나왔다.
당시 민주당 김기식 의원은 “이번 결정은 기업의 불공정행위에 대한 면죄부로 활용될 수 있다는 최악의 선례”라며 “이행안의 주요 내용은 기업의 통상적인 사회공헌활동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지능정보기술연구원의 경우 삼성전자, LG전자, SKT, KT 등이 각 30억원씩 모두 210억원을 출자했다.
여기에 15개의 대기업이 전담하고 있는 창조경제혁신센터에 들어가는 비용은 지금도 계속 발생하고 있다. 기부금 현황을 보면 2015∼2016년 6월 말 현재 기업들이 적게는 3100만원부터 많게는 121억원을 지원하고 있다. 정부가 창업지원을 위해 조성한 ‘창조경제혁신센터 펀드’에도 대기업이 투자 융자 보증 등으로 7000억원 넘는 돈을 댔다. 전담 기업이 미공개하고 있는 자체 지원 프로그램 비용과 운영비까지 포함할 경우 센터에 들어가는 돈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민주화된 이후에는 정권이 기업에 노골적으로 기금 참여를 요구한 적이 없었는데 이명박정부 이후 다시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명박정부 때도 기업들이 서민 대상 저리 대출사업인 ‘미소금융재단’에 10년간 1조원을 출연하기로 했고 동반성장기금에는 87개 대기업이 7183억원 출연금을 약정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 주도의 공익 법인들이 제 역할을 못해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정치적 입김이 아닌 시장 원칙에 따라 기금 등을 거둘 수 있는 법적 장치 강화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고세욱 심희정 기자 swkoh@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돈 내라”… 박근혜정부서 대기업들은 ‘봉’이었다
입력 2016-10-31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