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향해 애국가 부른 시민들… 경찰도 “여러분 마음 이해”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최저기온이 10도 아래로 뚝 떨어진 29일 밤 시민 3만여명(경찰 추산 1만2000여명)이 손에 촛불과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하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시민들이 부른 애국가는 밤하늘에 메아리치며 청와대로 향했다. 경찰은 “나라를 사랑하는 여러분의 마음을 이해한다”며 달랬다. 최순실 국정농단을 규탄하는 서울 광화문 일대 집회의 풍경이었다. 이날 집회는 이전 집회·시위와 조금 달랐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 주최로 오후 6시 집회가 열리자 서울 청계광장은 어린 자녀를 데려온 가족과 연인은 물론 노인층까지 다양한 시민들로 가득 찼다. 난생 처음 집회에 나왔다는 유모(67)씨는 아내와 함께였다. 유씨는 “박 대통령을 뽑은 나 자신이 참담하고 자녀들에게 죄를 지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온 이모(15)양은 “중학생도 납득하기 어렵고 부끄러운 일이라 미래의 주인으로서 나왔다”고 했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신모(37)씨는 품에 두 돌이 갓 지난 딸을 안고 아내, 여섯 살 아들과 함께했다. 신씨는 “훗날 아이들이 아빠와 엄마는 당시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을 때 부끄럽고 싶지 않아 나왔다”고 했다.

청계광장이 발 디딜 틈 없이 붐비자 인파는 청계천로까지 밀려났다. 경찰병력 4800명으론 역부족이었다. 오후 7시10분부터 행진에 나선 시민들이 당초 신고한 경로를 벗어나 청와대 쪽으로 향했지만 경찰이 조심스럽게 대응하면서 폴리스라인 3개가 별다른 충돌 없이 열렸다. 행진 선두는 오후 8시가 돼서야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에서 몸으로 막아선 경찰과 대치했다.

경찰은 ‘불법 집회’ 경고 대신 이례적 발언으로 평화 시위를 독려했다. 홍완선 서울 종로경찰서장은 오후 8시20분부터 “나라를 사랑하고 걱정하는 여러분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 이런 때일수록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하고 경찰 안내에 따라 이성적으로 행동해 달라”고 거듭 당부했다.

시민들은 평화로운 시위를 이어갔다. ‘특정 세력’이 주도했다기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분노해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선 이들이 많아서였다. 오후 9시10분쯤 시위대 한쪽에서 누군가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하자 웅성거리던 시민들이 하나둘 따라 불렀다. 곳곳에서 “경찰을 때리지 마라”고 서로 타이르며 흥분을 가라앉히기도 했다.

집회는 주최 측의 공식 종료 선언 뒤까지 이어지다 30일 오전 7시 남아 있는 시민 100여명이 해산하면서 마무리됐다. 집회 전 과정에서 연행된 사람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됐다가 풀려난 이모(26)씨뿐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은 30일 “이성적으로 협조해준 시민들에게 감사한다”고 밝혔다.

광장으로 나온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민중총궐기투쟁본부는 “당분간 저녁 광화문에서 촛불집회를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다음 달 12일에는 15만명 규모의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린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