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 프랑코나(57)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감독의 투수교체 시점은 상식을 파괴한다. 선발투수가 승부처에서 흔들리면 1회이든 2회이든 과감하게 버린다. 대신 가장 믿는 불펜투수를 투입한다. 앞선 이닝까지 어떻게 던졌는지는 그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마운드에 올린 투수가 몇 회를 맡을지도 미리 정하지도 계산하지도 않는다. 프랑코나에겐 ‘바로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세이버매트리션인 프랑코나 감독은 철저한 분석으로 선수별 자료를 구축한다. 1996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3루 코치로 시작한 20년의 지도자 경력으로 풍부한 경험도 쌓았다. 자료와 경험을 바탕으로 더그아웃에서 위기 때마다 최고의 전략을 짜낸다.
발상을 전환한 투수교체 시점은 배짱이나 요행이 아니다. 엄청난 경험이 동반된 직관이다. 스카이박스에서 그라운드를 내려다보는 구단주나 단장이 할 수 없는 오직 감독만의 야구! 프랑코나 감독의 클리블랜드가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월드시리즈 매직넘버를 1개로 줄인 이유다.
클리블랜드는 30일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 리글리필드에서 열린 월드시리즈 4차전 원정경기에서 시카고 컵스를 7대 2로 격파했다. 중간전적 3승1패. 월드시리즈는 7전 4선승제다. 앞으로 1승만 더하면 1948년을 마지막으로 지난해까지 67년 동안 되찾지 못한 우승반지를 낄 수 있다.
프랑코나 감독의 상대 편에는 한때의 친구가 자리잡고 있다. 컵스의 젊은 경영자 테오 앱스타인 야구부문 사장은 2004년 함께 보스턴 레드삭스가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동반자였다.
29살의 나이에 단장에 취임했던 엡스타인은 선수 기량을 숫자로 나열한 빌 제임스의 통계야구 세이버매트릭스 신봉자였고, 과거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단장으로 ‘머니볼’을 구사했던 빌리 빈 부사장과 같은 ‘단장 야구’의 선봉장이다.
엡스타인은 2011년 컵스로, 프랑코나는 2013년 클리블랜드로 자리를 옮겼다. 클리블랜드와 컵스의 월드시리즈는 5년 만의 해후이면서 ‘진짜 저주사냥꾼’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었다. 월드시리즈 우승의 무게중심이 클리블랜드 쪽으로 기울면서 프랑코나의 ‘감독 야구’는 엡스타인의 ‘단장 야구’를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선수단 전체를 서류로 판단하는 단장의 셈법으로는 그라운드 현장에서 선수들과 호흡하는 감독의 직관을 넘어설 수 없었다. 프랑코나의 남다른 투수교체 시기를 포함한 용인술이 그렇다. 지난 18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 로저스센터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4대 2로 격파한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3차전 원정경기는 백미였다. 선발투수 트레버 바우어가 손가락을 10바늘 꿰매고 등판을 강행한 최악의 상황에서 그는 투수 용인술의 진가를 발휘했다.
바우어가 ⅔이닝만 던지고 환부 출혈로 마운드에서 내려오자 댄 오테로부터 앤드류 밀러까지 6명의 투수를 차례로 올렸다. 투수마다 적게는 3개, 많게는 5개의 아웃카운트를 맡겼다. 하지만 절대로 2이닝을 넘기게 하지 않았다. 그렇게 토론토 타선을 9회말까지 2실점으로 틀어막았다.
클리블랜드가 19년 만에 월드시리즈 진출을 사실상 확정한 분수령이었다. 시리즈 최우수선수(MVP)는 네 경기에서 7⅔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14탈삼진을 작성한 밀러였다. 하지만 밀러의 호투는 투입 시점을 적절하게 판단한 프랑코나 감독의 전략과 직관이 있어 가능했다.
프랑코나 감독의 이런 직관과 전략은 월드시리즈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4차전 선발투수 코리 클루버를 사흘 전 등판했던 1차전과 마찬가지로 정확히 6이닝만 투입했고, 이후의 2이닝을 밀러에게 맡겼다. 예상을 깨고 1차전과 똑같은 선발 및 불펜 전략을 구사했다. 전날 3차전에서는 4⅓이닝 동안 2피안타 1볼넷으로 호투한 선발투수 조시 톰린을 내리고 불펜을 가동한 승부수를 던져 1대 0 신승을 지켰다. 세이버매트릭스만으로 내릴 수 없는 판단이다.
김철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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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월드시리즈] ‘단장야구’ 압도한 ‘감독야구’
입력 2016-10-31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