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빚 굴레 탈출, 지자체가 돕는다

입력 2016-10-30 18:48
부산 연제구 광역자활센터의 희망 금융복지 지원센터에서 근무하는 김남식씨가 지난 27일 센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부산 광역자활센터 제공

“60명, 137억원.”

부산시 광역자활센터의 희망 금융복지 지원센터에서 일하는 김남식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렇게 기록해 두었다. 빚을 감당하지 못해 찾아오는 이들의 워크아웃(채무조정)이나 개인파산을 도운 것이 지난해 5월부터 1년6개월간 60명이다. 이들이 137억원이라는 빚에서 벗어났다.

30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김씨는 “저와 상담해 빚에서 벗어난 60분 중에서 어쩌면 한두 분이라도 극단적인 선택에서 돌이켜 살아나지 않았을까 생각할 때 더없는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서민금융 상담창구들이 개인부채로 고민하는 서민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신용회복위원회나 서민금융진흥원, 은행 등이 자신들의 상품 위주로 상담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는 반면, 지자체의 서민금융 창구는 재무 상담부터 개인파산과 회생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맞춤형 상담으로 주목받고 있다. 부산시뿐만 아니라 서울시(금융복지상담센터), 경기도(서민금융복지지원센터), 성남시(금융복지상담센터) 등 여러 지자체들이 서민금융 상담에 관심을 쏟고 있다.

부산 희망 금융복지 지원센터의 김씨는 대기업 계열의 증권사 직원이었다. 부산 사상교회 집사이기도 한 그는 “내가 가진 금융 지식을 돈 없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고 서민금융 상담사로 변신했다.

한 30대 가장이 빚에 쫓기다 못해 도움을 구하러 찾아왔다.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어려운 환경 탓에 자활사업에 의존해 겨우 살아온 처지였다. 가난하지만 따뜻하게 살아온 부부의 모습을 보며 김씨는 어떤 도움이든 주고 싶었다. 워크아웃도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파산면책을 신청했다. 59일 만에 법원의 결정을 받았다.

“정말 기분 좋습니더. 힘이 나네예!”

상기된 목소리에 김씨도 함께 즐거워했다. 지원센터를 통한 첫 채무 탕감이었다. 매달 김씨가 상담하는 건수만 70∼80건이다. 김씨는 “내가 처음 생각했던 일은 이게 아니라 재무상담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젠 채무조정 일이 더 많아졌다”며 “부채에 짓눌린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고 말했다.

때로는 “죽고 싶은 마음뿐인데 마지막으로 찾아왔다”며 구구절절 사연을 풀어놓는 사람도 있고, 학자금대출을 갚지 못해 사회생활마저 어려워진 청년들도 있었다. 채무조정에 성공하면 연락을 끊는 사람들도 있지만, 김씨는 단순히 빚 부담을 덜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돈 관리를 돕는다는 처음 목표를 실천하려고 애쓴다.

“한 달 수입이 100만원이 채 안 된다고 해도 있는 대로 쓰는 게 아니라 계획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빚 수렁에서 빠져나왔다가 회생 기간 동안 다시 새로운 채무가 생길 확률이 높습니다. 누군가 옆에서 도와줘야 하는데, 이런 일은 정부나 지자체에서 감당하는 게 맞는다고 봅니다.”

김씨가 지원센터의 역할을 처음 구상했던 것도 선진국에선 지자체에서 주민들의 금융상담까지 도맡아 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지자체들이 서민금융에 예전보다 더 많은 관심을 쏟고 있긴 하지만, 인력이나 지원이 여전히 부족하다. 김씨는 요즘 부산에서 상담창구를 늘려 본격적인 금융복지상담 사업이 이뤄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는 “부산에 금융단지가 만들어지면서 금융회사와 관련 공기업들이 내려오고 있는데, 이들이 서민을 위한 제대로 된 부채상담과 재무상담 창구도 함께 운영하면 좋겠다”면서 “그것이 진정한 선진형 금융산업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