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조준 <1> “내 삶의 8할은 교회, 그리고 함께한 목회자들”

입력 2016-10-30 20:27
박조준 목사는 영적인 위기의 시대 속에서 소망을 잃지 말 것을 당부했다. 지난 5월 국민일보목회자포럼에서 발언하는 박 목사.국민일보DB

교회와 사회 모두 심각한 영적 위기에 처했음을 무섭도록 느낀다.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한국 교회와 이 나라를 위해 기도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목회자들의 이런 저런 비위 소식도 모자라 한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최태민 사건 속에서도 ‘그가 목사가 맞다 아니다’하는 이야기가 오르내린다.

더구나 한 나라를 이끌어가는 대통령이 ‘주술적 예언가’에 빠져 있다는 의혹이 일고 있는 것만으로도 목사로서, 한 국민으로서 수치스럽기 그지없다.

‘교회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 이 말을 나는 확신한다. 교회가 바로 서려면 목회자들이 바로 서야 함은 물론이다. 한평생 목회자로 살아온 나에게 ‘역경의 열매’ 집필 의뢰가 들어왔을 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하며 기도했다. 되돌아보니 내 삶의 8할은 그 터전이 교회였고, 함께 한 이들은 목회자들이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들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교회와 목회자를 많이 사랑한다. 앞으로도 그 사랑을 더 키워갈 것이다.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히 6:19)

누구나 역경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버려선 안 된다. 성경 말씀처럼 ‘소망은 영혼의 닻’임을 믿는 이들은 어려움을 넉넉히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목회자도, 교회도, 이 나라도 마찬가지다.

나는 평안남도 강동군(현 평양시 강동구) 대동강변에서 태어난 촌놈이다. 1년에 한번 추석 때가 되면 평양에서 성묘하러 택시를 타고 귀성객들이 동네에 들어오는데, 그때가 자동차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집 주변으로 둘러싸인 과수원과 채소밭, 집 뒤로 흐르는 대동강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무엇보다 마을 한복판에 서 있는 교회당에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건 복 중의 복이다. 들은 얘기로는 양조장을 하며 돈을 많이 벌었던 증조부가 기독교가 들어올 때 예수를 영접했다고 한다. 이후 한국교회의 전통대로 금주·금연을 실천하면서 양조장을 접고, 멀리서도 잘 보이는 곳에 교회를 세워 기증했다.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이리라. 하나님께 헌신한 증조부가 여유롭게 사는 걸 본 동네사람들은 “저 집은 예수를 잘 믿어서 복을 받는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아, 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나에겐 없다. 평양 숭인상고를 다니셨던 아버지는 열여덟 살에 결혼을 해서 스물한 살, 스물세 살에 각각 나와 여동생을 보셨다. 그런 아버지가 여동생이 태어난 해, 그 젊고 젊은 나이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셨다. 당시 세살배기였던 내가 어떻게 아버지를 기억하겠는가. 한 장 남은 아버지의 사진을 본 것이 고작이다. 그것마저 6·25전쟁이 터지고 1·4후퇴 때 부랴부랴 피난 가느라 챙겨 나오지 못했다. 그 미련과 아쉬움 같은 게 여든이 넘은 지금까지도 가슴 한 편에 덩그러니 남아 있다.

정리=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약력=△1934년 평안남도 강동 출생 △서울대 문리대 졸업 △장로회신학대학교 졸업 △미국 프린스턴신학대학원 졸업 △아주사퍼시픽대학교 박사 △서울 영은교회(1960∼1966) 담임 △서울 영락교회(1972∼1985) 담임 △서울 갈보리교회(1985∼2003) 담임 △(현)세계지도력개발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