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으로 아이를 잃은 경험은 아이를 죽음으로 잃은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 죽음 또한 똑같이 끔찍하지만 죽음은 끝이 있고 슬픔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를 입양으로 떠나보낸 엄마는 위로받지 못하며, 아기가 있었다는 것을 잊어야 하며, 자기 아이가 살아 있거나 행복하거나 건강한지에 대해 알 수가 없다.” (조솔·캐럴 윌슨 부터보의 ‘입양 치유’ 중에서)
1950년 한국전쟁 이후 20만 명 이상의 한국 영아 및 아동들이 해외로 입양됐다. 지금도 매년 1000명 이상의 한국 영아들이 자신이 태어나 세상과 마주한 땅에서 살지 못하고 국내외로 입양되고 있다. 지난해 경우 입양된 아동은 1057 명이다. 이 가운데 국내 입양은 683명, 해외입양은 374명이다.
평생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해외 입양인들과 아이를 떠나보낸 여성이 겪는 마음의 상처는 말할 수 없이 크다.
김도현(62) 목사는 입양인과 미혼모들의 치유와 회복을 돕는 ‘교회 밖 목사’로 살고 있다. 그는 평생 이별과 분리에 대한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이들을 돕는 것이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뿌리의 집(원장 김도현)에서 그를 만났다. 뿌리의 집은 해외 입양인들의 게스트하우스이자 해외 입양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시민단체이다. 해마다 300여명의 해외 입양인들이 이곳에 머물다 가며 매일 5∼6명의 해외 입양인들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그는 ‘뿌리의 집’을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가는 여정의 동반자’라고 소개했다. 입양의 본질이 생모와의 이별로 볼 때, 뿌리의 집은 이별로 생긴 상처를 회복해 가는 이들의 여정을 함께 하는 곳이란 설명이었다.
미국 미네소타주 연구(2013년)를 비롯해 몇몇 연구에 따르면 입양인의 자살률, 알코올·마약중독, 성범죄율, 비혼율이 비입양인보다 4배 가량 높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입양인 역시 정체성의 혼란과 내면의 상처로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아이를 입양 보낼 수밖에 없던 친생모 역시 평생 죄책감에 시달린다.
김 목사는 생모와 아이가 분리되는 그 지점에 대한 성찰을 촉구했다. “입양을 보낼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이 무엇인지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여성이 24시간 아이를 돌보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어 급격한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이 지점을 정부가 도와야 합니다. 또 모든 책임이 여성에게 돌려지는 한국의 가부장적인 사회적 편견도 바뀌어야 합니다.”
그는 아동양육으로 어려움을 겪는 ‘위기가정’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위기가정 지원 등으로 원가족(친생가족)의 이별을 예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입양, 위탁, 시설 수용 등 친부모로부터 멀어질수록 아이에게 경제적 지원이 많아지는 현재의 왜곡된 시스템을 고쳐야 합니다. 정부가 매년 시설 아동에 2500억원, 위탁아동에 1000억원, 입양아동에 400억원 이상의 예산을 쓰고 있습니다. 현재 60억원에 불과한 미혼모 지원예산을 늘린다면 친생 부모에 의한 아동양육이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김 목사는 “미혼모들이 아이를 포기하는 이유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라며 “국내외 입양 아동의 90% 가까이가 미혼모 가정의 아이인데 입양만 독려한다면 문제를 푸는 순서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입양 기관이 운영하는 미혼모 시설에서 양육을 결심하는 미혼모 비율이 30% 가량이었던 반면, 양육을 지원하는 미혼모 시설에서는 80%에 달했습니다.” 그는 생모에게 양육의 선택권을 충분히 제공한 후, 그들이 주체적 결단과 최선의 선택으로서 아이의 양육을 포기할 때, 입양부모가 나서서 그 아이들을 거두자고 제안 했다.
그가 입양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스위스 베른에서 선교활동을 하던 중 입양인의 자조모임을 이끌면서였다. 그는 대학(서울대 국어교육과와 장로회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새문안교회 부목사로 목회 활동을 하다가 92년 스위스 개신교단의 한국 담당 목사로 갔다. 93년 스위스 바젤에 살고 있던 한 한국계 입양인의 자살을 계기로 한국계 입양인들과 9년 동안 동고동락하게 됐다. 이후 영국 버밍엄대에서 ‘국제간 아동 입양과 한국의 친생모’란 주제로 논문을 쓰면서 우리 사회가 한 번도 입양을 보낸 어머니들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후 김길자 경인여대 총장이 2003년 7월 뿌리의 집을 설립한 뒤 그에게 운영을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2004년 2월 귀국해 12년 동안 이 일을 맡고 있다.
뿌리의 집은 그동안 친생가족중심의 아동양육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을 꾸준히 내놓았다. 2011년부터 매년 5월 11일 ‘입양의 날’에 ‘싱글맘의 날’ 행사를 열고 있다. 정부가 입양 활성화에 나서기에 앞서 어려운 현실에 처한 미혼모들이 편견에 시달리지 않고 직접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촉구하고 있다.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도의 혁신과 아동·여성 인권에 대한 참여는 이웃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우리 사회가 따뜻한 환대의 공동체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다.
글=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 사진=김보연 인턴기자
‘뿌리의 집’ 원장 김도현 목사 “이웃 사랑하라는 부르심, 입양인 보듬기로 응답”
입력 2016-10-31 2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