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하루가 한 달 같고, 일주일을 살아도 반년을 사는 기분이다. 난무하는 폭로와 밝혀지는 소문의 진상들이 경악을 금할 수 없는 지경이고, 설마 하던 일들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겪는 허탈감에 힘겨운 나날들이다. 사회적으로도 그렇지만 문단 내부에서도 그랬다. 문단 내 성폭력 문제, 등단제도 문제 제기로 문단 내 권력구조가 뒤집어지고 있다. ‘권력자’였던 몇몇 남성 문인이 입장을 표명하는 모습에서 나는 여당 국회의원들, 주류 언론사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문학을 한다는 사람들이,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만들어가겠다고 했던 ‘사회적 리더’들이 그렇지는 않겠지’라고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 해도 어쩔 수 없다.
혹시라도 남에게는 없는 힘이 나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면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한다.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조속한 대응과 발 빠른 위계점검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동안 자신이 했던 행동들, 말을 곱씹어 보며 피해 받고 상처가 되었던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가닿았을지 생각하는 것이 먼저다. 수년간, 혹은 수십 년간 받은 억압과 갈등 속에서 속이 곪을 대로 곪아 지쳐 있을 피해자들을 떠올린다면 그게 옳다. 그런데 그 ‘생각’이 그렇게 몇 시간 만에 혹은 하루 만에 조속히 이루어지고, ‘입장’이라는 답변을 내놓고 금방 위계를 정리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왜 그동안은 그렇게 하지 않았던 걸까?
그동안 억울하게 참았던 약자들의 분노와 민중의 궐기가 무서워서 한시라도 빨리 그 성난 마음들을 달래주며 시간을 벌어 안전하게 빠져나갈 생각을 하는 건 아닐까? 이것은 내가 그 입장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지 그들이 나와 같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한다. 토요일 광화문 민중총궐기 집회가 무서워 최순실이 밤 비행기를 타고 일요일 아침에 도착한 것은 아니겠지만. 자신의 안위를 위한 권력자들의 행동은 본인들만 모를 뿐 지켜보는 사람은 다 보인다. 국민들은, 그리고 그동안 참았던 여성들은 바보가 아니다. 나의 상식으로 진정한 반성과 사과는 “아, 미안” “고의가 아니었어” “그때는 취했나 봐” “순수한 마음으로” 따위의 말로 이뤄져서는 안 된다.
글=유형진(시인),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권력령(靈)이 ‘씐’ 자들의 사과
입력 2016-10-30 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