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28일 저녁 수석비서관들에게 일괄 사표 제출을 지시한 것은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와의 면담 직후 이뤄졌다. 앞서 여권 지도부는 ‘전원 사퇴’를 내걸고 청와대 인적쇄신을 강하게 압박했다.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규모 촛불집회가 정국의 중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여당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갖춰 거세지고 있는 민심이반을 막아보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 대표는 이날 청와대를 찾아 박 대통령과 1시간30분 동안 독대하며 조속한 인적쇄신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정치권과 국민들의 여론에 대해 말하고 왔다”면서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제안한 인적쇄신 요구가 빨리 추진되도록 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고 밝혔다. 이어 “워낙 엄중한 시기인 만큼 국정은 국정대로, 이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는 수사대로 진행돼야 한다고 전했다”면서 “수사는 특검이든, 검찰 수사가 됐든 실체 규명을 해 달라고 건의했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눴지만 대통령은 주로 말을 많이 들었다”면서 “상당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구체적인 발언 내용에 대해선 언급을 피했다.
앞서 정진석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에 청와대 비서진과 내각의 전면 인적쇄신을 요구한 만큼 대통령이 이것을 안 받아주면 당 지도부가 전원 사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인적쇄신 의견을) 대통령에 전달한 것이 아니라 요구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의 사표 제출 지시는 흔들리고 있는 여당 친박(친박근혜) 지도부에 힘을 실어주는 의미도 담겨 있다.
당 내부에서는 현재 당 최고기구인 최고위원회의 대신 계파를 초월한 중진협의체를 구성해 위기상황을 돌파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이 대표 등 친박계로 구성된 최고위가 과연 박 대통령에게 직언하며 ‘최순실 게이트’ 정국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이 확산되기 때문이다. 또 지도부가 물러나는 비상대책위원회보다 현재의 지도부와 중진의원들이 머리를 맞대는 중진협의체가 더욱 안정적일 수 있다는 고려가 깔려 있다.
앞서 정병국 나경원 김용태 김성태 권성동 의원 등 비주류 중진의원 7명은 별도 모임을 갖고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모임이 끝난 뒤 정 의원은 “당이 지금 상황에서는 제 기능을 못하기 때문에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가야 하고 청와대 인적쇄신을 해야 한다는 데 공감했다”고 강조했다.
지도부 사퇴, 거국중립내각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계속됐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안타깝지만 이정현 대표는 리더십을 상실했다”면서 “이 대표는 당과 국가를 위해 물러나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하윤해 이종선 기자 justice@kmib.co.kr
李와 면담 직후 전격 결정… 與 지도부에 힘싣기
입력 2016-10-29 0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