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는 전문가들이 많이 있으니까 도움을 받으면 되고….” 최순실(60)씨는 스포츠마케팅업체 더블루케이의 대표이사 면접을 보러 온 조모(57)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씨가 “스포츠는 잘 모르고 경영은 안다”고 말하자 최씨는 “중소기업 경영하듯이 하면 된다”고 답했다. 지난 1월 3일, 서울 논현동에 있는 테스타로싸 커피숍에서였다. 이 만남은 조씨가 지난 26일 검찰에 제출한 스마트폰 일정표에 입력돼 있던 내용 중 하나다.
최씨의 사업 추진 스타일은 시원시원했지만, 의사결정이 수평적이진 않았다. 최씨는 조씨를 만난 지 1주일 만인 10일 ‘다음 날 출근하라’고 통보했다. 사무실 임대계약과 사업자등록, 법인통장 개설 등을 주내에 마무리하도록 지시했다. 최씨가 조씨에게 “스포츠에 대해 잘 안다”고 소개한 고영태(40)씨가 더블루케이 설립 초반 많은 일을 담당했다. 서울 청담동 한 건물 5층에 계약된 사무실은 고씨가 미리 알아둔 곳이었다. 자본금 1억원과 장기부채로 처리된 건물임대료 4000만원은 모두 고씨가 준비했다.
조씨는 출근 5일째인 1월 15일 ‘갑’을 ‘더블루케이 회장 최서원’으로, ‘을’에는 자기 이름을 넣은 근로계약서를 내밀었다. 최씨는 서명하지 않고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고 한다. 이날 최씨는 조씨에게 “그랜드코리아레저(GKL)의 스포츠단 창단 제안서를 급히 만들라”고 지시했다. 책상과 의자만 있는 새 사무실에서 조씨와 고씨, K스포츠재단의 박헌영 과장과 노숭일 부장 4명이 이튿날 새벽 2시까지 제안서를 만들었다.
이후에도 특정업체들에 대한 ‘스포츠단 창단 제안서’를 만들 때가 있었다. 고씨와 박 과장, 노 부장이 대부분 만들었다. 조씨는 그저 오탈자나 검토해 최씨에게 보고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최씨는 제안서를 받으면 조씨의 대표이사 명함을 끼워 어디론가 가져갔다. 며칠이 지나면 어김없이 제안서를 받은 회사 오너에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정부 고위직들도 조씨에게 만나자는 전화를 걸어 왔다.
조씨는 점점 불안해졌는데, 막연히 최씨의 능력이라고 추측할 뿐이었다. 조씨가 김상률 당시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으로부터 만나자는 전화가 왔다고 보고를 했는데도 최씨는 “박헌영 과장과 같이 참석하라”는 지시를 내릴 뿐이었다.
최씨는 보고를 받는 외에는 일상적인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 조씨가 상대편 회사의 요구사항을 언급하면 최씨는 매우 화를 내며 야단을 쳤다. 조씨는 “사임 내용증명을 보낸 날 이후부터 회장과 전화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법률자문 역할로 채용된 최모(56) 변호사가 지난 3월 말부터 대표이사직을 수행했다. 최 변호사도 7월을 넘기지 못했다.
28일 국세청에 따르면 더블루케이 한국법인은 지난 8월 2일 폐업했다. 더블루케이의 두 대표이사는 모두 ‘최서원’이 ‘최순실’인 줄을 몰랐고, 실질적인 일은 고씨가 했다고 입을 모은다. 조씨는 검찰에 낸 변호인 의견서에 “나는 월급쟁이, 소위 ‘바지사장’에 불과했다”고 썼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제안서 당장 만들라” 쪼고 또 쪼는 최순실 업무스타일
입력 2016-10-29 0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