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미국의 선택] 미셸 “클린턴, 버락·빌보다 더 나은 자질 갖춰”

입력 2016-10-29 00:06 수정 2016-10-29 00:58
힐러리 클린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왼쪽)가 27일(현지시간) 노스캐롤라이나주 윈스턴-세일럼 유세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와 어깨를 기댄 채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미셸은 노스캐롤라이나의 젊은 층과 흑인들에 인기가 많아 이날 유세에 투입됐다. AP뉴시스
올해 처음 투표권을 행사하는 몰리 밀러양(왼쪽 두 번째)과 친구들이 트럼프를 풍자하는 셔츠를 입고 클린턴의 유세장을 찾았다.전석운 특파원
미국의 전·현직 퍼스트레이디 두 명이 27일 오후(현지시간) 나란히 유세장 연단에 오르자 노스캐롤라이나 웨이크포레스트 대학 농구장을 가득 메운 지지자 1만1000여명은 일제히 환호했다. 현직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는 전직 퍼스트레이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를 미국의 첫 여성 대통령으로 선출해야 한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검정색 바탕에 흰 꽃무늬 수가 들어간 블라우스 차림의 미셸은 갈색 상의를 입은 클린턴을 꼭 끌어안은 뒤 지지연설을 시작했다. 미셸이 “하와이 출신 흑백 혼혈아가 미국 대통령이 되었듯 고아의 딸도 가장 높은 유리천장을 뚫을 수 있다”고 기염을 토하자 장내는 잠시 숙연해졌다.

갤럽의 지난 8월 조사에서 미셸의 대중적 인기(호감도 64%)는 남편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국정지지율(54%)이나 클린턴의 호감도(43%)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미셸이 연설을 시작하자 청중석에서는 “우리는 당신을 원한다”는 고함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미셸은 클린턴의 지지를 호소하는 데 혼신의 힘을 쏟았다.

미셸은 퍼스트레이디, 상원의원, 국무장관을 거친 클린턴의 화려한 경력을 늘어놓으면서도 그녀에게 신산한 삶을 살아온 부모가 있었다며 유권자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미셸은 “클린턴이 한평생 가족의 가치와 어린이들을 위해 투쟁한 뒤에는 고아로 자라난 어머니의 영향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5년 전 세상을 떠난 클린턴의 친정어머니 도로시 로드햄은 8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외할아버지 집에 얹혀살다가 14살 때 집을 떠나 주급 3달러를 받는 가정부로 일할 만큼 어려운 성장과정을 보냈다. 월가 은행들로부터 거액의 강연료를 받아 챙긴 사실이 드러나 ‘중산층과 소외계층의 대변자가 되겠다’는 구호가 무색해진 클린턴을 옹호하기 위해 잘 알려지지 않은 그녀의 가족사를 끄집어낸 것이다.

미셸은 그러면서도 클린턴의 리더십을 극찬했다. 그녀가 “클린턴은 버락(오바마 대통령)이나 빌(클린턴 전 대통령)보다 더 나은 대통령이 될 자질을 갖췄다”며 “게다가 클린턴은 여성”이라고 말하자 여성 지지자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클린턴과 미셸 여사가 공동유세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노스캐롤라이나 윈스턴-세일럼의 로렌스 조엘 참전용사 기념체육관은 이날 오전 9시부터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궂은 날씨가 예고되면서 주최 측이 전날 갑자기 농구장으로 유세 장소를 바꿨는데도 행사가 시작되기 5시간 전부터 줄을 섰다.

유세장을 찾은 지지자들 중에는 어린 자녀를 대동한 가족이 많았다. 유세 연설을 듣기 위해 자동차로 3시간을 달려왔다는 의사 에이미 하워턴(42·여)은 이날 하루 병원 문을 닫고, 초등학교 6학년 딸아이와 함께 유세장을 찾았다고 했다. 기자가 “왜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유세장에 데려 왔느냐”고 묻자 하워턴은 “첫 여성 대통령이 탄생하는 과정과 역사적인 현장을 지켜보는 것도 중요한 공부”라고 대답했다.

올해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대학생 몰리 밀러(18)양은 기자가 “클린턴을 지지하는 이유를 한마디로 말해보라”고 하자 “트럼프가 싫기 때문”이라고 잘라 말했다.

기자가 “왜 많은 사람이 클린턴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밀러는 “클린턴은 아는 것이 많고, 많은 업적을 쌓았다”며 “개인 이메일 스캔들로 지탄을 받지만 나는 클린턴을 신뢰한다”고 당차게 말했다.

미셸과 클린턴이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첫 공동유세에 나선 건 이곳이 중요한 접전 지역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노스캐롤라이나는 2008년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 당선된 해를 제외하면 과거 9차례 대선에서 8차례나 공화당 후보를 선택할 만큼 민주당이 약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올해는 이곳에서 클린턴과 트럼프의 지지율이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이는 시소게임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날 현재 클린턴의 이 지역 지지율(리얼클리어폴리틱스 기준)은 47.8%로 트럼프의 44.8%보다 3% 포인트 앞서 있다. 전국 평균 지지율 격차(5.7%)보다 낮다. 클린턴으로서는 대승을 거두기 위한 전략으로 흑인 비중이 높고, 유난히 조기투표율이 높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젊은 층과 흑인들에게 어필하는 미셸을 동반하는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윈스턴-세일럼(노스캐롤라이나)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