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박영희(71). 독일에 거주하는 그는 유럽에서 일찌감치 ‘제2의 윤이상’으로 알려졌다. 서구적인 작곡기법에 동양철학과 그리스신화 등을 접목한 작품 세계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그는 여성 작곡가 최초로 스위스 보스빌 콩쿠르 등에서 우승했으며 도나우싱엔 현대음악제 등 여러 페스티벌로부터 곡을 위촉받았다. 또 여성 작곡가로는 처음 독일어권 음대 작곡과 교수(1994년 브레멘 음대)가 됐다. 그의 발걸음 하나하나가 후배 여성 작곡가들의 기반이 됐다는 평가다.
하지만 그의 명성과 권위에 비해 국내에선 오랫동안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올해 ‘박영희 작곡상’이 제정되면서 그를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주독일 한국문화원이 주최하는 박영희 작곡상은 전세계 40세 이하 작곡가를 대상으로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어울려 연주할 수 있는 현대음악 양식의 작품을 공모로 뽑는다. 지난 24일 한국과 콜롬비아 작곡가의 작품이 각각 1·2위로 뽑혔으며, 두 작품은 12월 9일 베를린필하모니 캄머홀에서 연주된다.
28일 이화여대가 주최하는 ‘박영희 작품활동 50주년 기념 심포지엄’ 참석차 한국에 온 그를 만났다. 그는 “내가 쓴 곡에는 시나위, 판소리, 농악 등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 많다. 교수 퇴임 이후 내 음악의 뿌리인 국악에 대해 좀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면서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한국의 전통적인 악기와 선율이 해외에 알려지지 않아서 늘 안타까웠다. 이번에 내 이름을 딴 작곡상 공모를 하면서 국악기를 하나 이상 넣으라고 한 것은 국악을 세계에 알리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서울대가 인터넷에 국악기에 대한 소개와 연주법을 영어로 올려놓은 덕분에 해외 작곡가들도 도움을 얻고 있다. 이번에 2위에 오른 콜롬비아 작곡가가 가야금을 너무나 잘 활용해서 깜짝 놀랐다”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한국의 정서를 담는 것은 물론 제목까지 한국말로 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고운 님(GO-UN NIM)’ ‘만남(MAN-NAM)’ ‘타령(TA-RYONG)’처럼 70여편의 작품 가운데 2/3가 한국말 제목을 달고 있을 정도다. 그는 “난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우리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 알리고 싶었다”면서 “한국에선 클래식 등 서양의 문화예술만 숭상하는 사대주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그가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은 그를 현대음악계의 스타로 만든 ‘소리’(1980)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 작품이 5월 광주 민주화운동에서 영감을 받아 쓰여진 만큼 당시 독재정부의 기피인물로 찍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리’는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보다 1년 먼저 나왔다.
하지만 그는 “‘소리’를 1970년대 중반부터 구상하고 있었던데다, 광주 민중항쟁에서 일부 영감을 얻은 것은 초연 이후 10여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 밝힌 것이다. 내가 한국 작곡계의 주류가 아니다보니 네트워크가 없어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본다”면서 “독일 유학을 마친 후 한국에 돌아오고 싶었지만 배척하는 분위기가 있는 대학에선 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는 독일에 남았기 때문에 작곡가로서 음악적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어 “한국이 오랫동안 나를 인정하지 않았고, 사회 전반의 시스템은 지금도 답답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내 뿌리인 한국이 좋은 것을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말했다.
글=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단독 인터뷰] 재독 작곡가 박영희 “한국이 날 인정 안했지만… 내 뿌리인 한국이 좋다”
입력 2016-10-30 1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