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대통령이 아직도 상황 파악을 못하고 있다

입력 2016-10-28 17:27 수정 2016-10-29 01:01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주말 서울 한복판에서 대규모 대통령 하야 촉구 집회가 예정된 가운데 나온 청와대의 현 상황 인식이 국민을 절망케 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청와대 관계자는 28일 기자들과 만나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하면서 흔들림 없는 국정운영을 위해 다각적 방향에서 심사숙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통령의 입장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부서를 책임진 인사다. 이 발언이 대통령 의중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미증유의 국정 마비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라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는 데 비하면 참으로 한가한 소리로 들린다. 지금 정치권과 각계 원로들은 대통령에게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하거나 책임총리를 임명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그런데 청와대는 대통령이 여전히 고민 중이며, 더욱이 가진 권한을 내려놓을 생각이 없음을 시사한 것이다. 황교안 국무총리가 27일 국회에 나와 거국중립내각 구성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저 말잔치가 되고 말지 않겠는가 하는 걱정이 있다”고 말한 것과도 기류가 통한다. 대통령은 28일 밤 수석비서관에게 일괄사표 제출을 지시했지만 시늉에 그치지 말고 청와대부터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전면적으로 쇄신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이번 국기문란 사건이 시간이 흐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나갈 것으로 보고 있는지 묻고 싶다. 그제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장의 텅텅 빈 좌석을 목도하지 않았는가. 이미 마음속에서 대통령을 지운 국민들이 사태수습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라고 원하고 있는데도 머뭇거린다면 사태만 악화시킬 뿐이다.

아울러 대통령은 국민적 배신감에 통감한다면 헌법의 불소추 특권을 따지지 말고 스스로 검찰이나 특검의 수사를 받겠다고 자처해야 한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지퍼 게이트’ 당시 특검 수사에 응함으로써 오히려 남은 임기를 수행할 수 있었다. 박 대통령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