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에서 지난달 12일 규모 5.1, 5.8의 지진이 잇따라 발생한 지 한 달이 훌쩍 넘었다. 경주는 지진 공포에서 벗어나 서서히 안정을 찾고 있었다. 주민들도 생업으로 돌아가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지진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진 것은 아니다. 아직 복구되지 못한 문화재, 관광도시 경주 이미지가 무색할 정도로 썰렁한 관광지 풍경 등은 이곳이 강력한 지진이 발생한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나게 한다.
지진 진앙지 내남면 ‘일상으로’
경주 지진의 진앙이었던 내남면을 지난 26일 다시 찾았다. 부지2리 마을 주민들은 벼 수확 시기를 맞아 분주했다. 동네 곳곳에서 수확한 찰벼(찹쌀)를 말리고 있었고 논에서는 콤바인이 메벼를 베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진이 500회 이상 이어지고 있지만 마을은 지진 공포에서 벗어나 일상으로 돌아간 듯 보였다. 부지리에 있는 내남초등학교도 지진으로 중단했던 학교 리모델링 공사를 다시 시작했다. 학교 관계자는 “지진 후 10일 정도 공사를 중단했는데 더 미룰 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부지2리에서 만난 박영수(77)씨는 “여진이 계속 나긴 하는데 요즘은 극심하게 불안감을 느끼지는 않는다”며 “마을 사람들도 처음보다는 잘 견디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주민들도 박씨와 마찬가지였다. 수확 시기라 일이 바쁜 데다 계속되는 여진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박종헌(61) 부지2리 이장은 “요즘에는 마을 주민들이 여진 때문에 뛰쳐나오거나 마을회관으로 피난오지 않는다”며 “주민 모두 어느 정도 지진에 익숙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기와에는 아직 지진 흔적
부지1리에서는 방수 천막이 덮여 있는 지붕과 금이 가고 기울어진 담장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기와집이 많아 피해가 컸던 선도동은 대부분 집들이 복구를 마친 상태였다. 복구를 한 기와에는 진흙이 묻어 있어 피해를 입지 않은 기와와 확연히 차이가 났다. 당장 급한 대로 응급복구를 한 탓이다.
부지1리에서 만난 김춘이(83·여)씨는 “시에서 담장이 무너지고 금 간 것은 보상이 안 된다고 해서 안 고치고 그냥 둔 집들도 아직 많다”고 귀띔했다.
선도동 주민 최태석(56·여)씨는 “추석 지나고 자원봉사를 온 와공(기와 전문가), 친척들과 함께 기와지붕을 응급 복구했는데 화장실 등은 무너진 상태로 그대로 뒀다”며 “혹시 지진이 또 나면 기와지붕이 다시 무너질 텐데 돈을 많이 들여 새 기와로 완전 복구할 필요가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관광도시 명성 ‘흔들’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로 붐벼야 할 경주 주요 관광지는 썰렁했다. 경주시는 국내 관광객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 관광지 입장료를 받지 않고 주차장도 무료 운영하고 있지만 중국과 일본 관광객만 찾을 뿐 국내 관광객은 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첨성대 주변 한 상인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손님이 절반도 안 되는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첨성대, 대릉원, 석빙고, 동궁과 월지 등이 모여 있는 경주역사유적지구는 수학여행 인기 코스였지만 이날 수학여행단 등 국내 단체 손님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동궁과 월지 입구에서는 안내 직원이 입장료가 무료라고 설명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지만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은 탓에 입장객을 모으는 것이 쉽지 않았다. 주요 유적지마다 ‘지진 대응 요령’이 적힌 안내판이 설치돼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지난 9월 경주를 찾은 관광객은 57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07만명에 비해 47%나 감소했다. 경주 수학여행을 계획 중이었던 전국 270여개 초·중·고교 대부분이 일정을 취소하거나 연기했기 때문이다.
첨성대 안내소에서 만난 이재숙(60·여) 문화관광해설사는 “원래 지금쯤이면 수학여행 온 학생들로 붐벼야 하는데 너무 썰렁해 일이 없다”며 “메르스, 세월호 사태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16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경주=글·사진 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
[지진 한 달여… 경주를 가다] ‘놀란 마음’진정됐지만… ‘끊긴 발길’ 회복 안돼
입력 2016-10-29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