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가족도, 친척도 아닌 최순실(60·최서원으로 개명)씨에게 왜 그토록 목을 맸던 걸까. 청와대 내 엘리트 참모들보다 민간인 최씨에게 극단적으로 의지한 이유는 뭘까. 한 정신과 의사는 “현재 일어나는 일 자체가 지극히 비이성적이고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
일부 정신의학·심리 전문가들은 박 대통령이 젊은 시절 불우했던 가족사와 이후 겪었던 정신·심리적 상황, 최순실씨 일가와의 40년 가까운 인연에 주목했다. 박 대통령은 22세 때인 1974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총격 피살로 큰 충격을 받았다. 또 5년 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마저 측근 손에 피살됐다. 부모를 모두 잃은 상실감 때문에 세상을 향한 불신과 두려움이 컸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최순실씨의 아버지 최태민(1912∼1994)씨는 육 여사 피살 직후 심리적 혼돈을 겪던 박 대통령에게 접근했으며 이후 딸인 최순실씨가 지근거리에서 계속 보좌해 왔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도권 대학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A교수는 27일 “일찍이 부모를 충격적 사건으로 잃어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이 큰 상황에서 최씨 일가가 오랫동안 곁에서 힘이 돼 주고 의리를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 믿고 의지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A교수는 “박 대통령은 동생 등 가족과 관계가 멀어진 상황이었는데, 이럴 경우 대개 자기 마음을 알아주는 대상을 피붙이처럼 생각하고 가까이 두려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수도권의 또 다른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B교수도 “의학적으로 봤을 때 ‘애착 대상’을 상실하면 새로운 애착 대상을 찾는데, 자신한테 관심 갖고 친절히 대해 준 사람한테 정이 가게 된다”면서 “그런 관계를 수십년간 유지해 왔다면 공인이 됐다고 하더라도 단칼에 인연을 끊어버릴 순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즈덤센터 황상민(전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고문은 “박 대통령은 의사 결정을 스스로 하지 못하는 5세 아이와 같은 상태였기 때문에 자신을 돌봐주는 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심리적 미성숙’과 연관지어 설명했다.
황 고문은 “박 대통령이 성인기에 심리적 애착 관계를 형성한 사람이 최태민씨였고, 그 애착 관계가 딸 최순실씨에게 이어진 것”이라면서 “박 대통령이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텐데, 사회적 역할과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정치인이라서 생긴 문제”라고도 했다.
일각에선 최씨 부녀의 영적·종교적 힘에 현혹됐을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A교수는 “대개 이런 경우 합리적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영적·종교적 상황에서) 쉽게 벗어난다”며 “다만 젊었을 때 충격적 일을 당한 사람은 쉽지 않을 수 있고, 과도하게 몰입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대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C교수는 “영적인 부분은 잘 모르겠지만 어린시절 영향을 받을수록, 힘들 때 도움을 받을수록 지배력이 커진다. 일종의 ‘최면 현상’과 유사하게 깊은 애착이 형성되면 더욱 집착하게 된다”고 했다.
민태원 홍석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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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도움받아 깊은 애착… 비이성적”
입력 2016-10-28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