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중도시, 꿈이 아니다

입력 2016-10-29 00:01
김재경 감리단장


부산 기장군 일광해수욕장에서 승용차로 5분쯤 가다 보면 14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어촌이 나온다. 이천리 이동마을이다. 이 마을 주민들은 특산품인 미역과 다시마를 채취하며 살아오고 있다. 이 마을은 요즘 굴착기 등에서 뿜어 나오는 공사 소리가 요란하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대형 건물 2개동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바다 밑 도시를 만들기 위한 시설물로 지하 1층 지상 4층에 연면적 7857㎡의 해조류육종융합연구센터 건물이다.

이곳을 찾은 27일에는 50여명의 인부가 막바지 공사에 한창이었다. 크레인과 굴착기는 조경과 유리, 토목·석재 공사 마무리에 분주하게 움직였다. 시설물의 핵심인 미역·다시마 종묘배양동에는 수조와 해수취수관로를 연결하는 난공사에 매달렸다. 마을 앞바다 220m 거리에서 해상바지선이 직경 200㎜의 취수관로를 배양동 수조까지 연결하는 작업이다. 취수관로는 수심 4∼6m 해저 암반에 고정된다. 특수재질로 만든 16개의 수조는 각각 8∼12t 규모로 다음 달 말 공사가 완료되면 이곳에 해수가 채워지고 미역·다시마 종묘가 배양된다. 국내 최고의 해조류 종묘를 연구·개발하는 전진기지인 셈이다.

전국 최초로 ‘바다 밑 도시계획’이 추진되고 있는 현장이다.

바다 밑 도시계획은 “바다 밑도 육지처럼 생태계가 잘 보전된 균형 잡힌 개발계획을 세울 수 없을까?”라는 발상으로 2014년 탄생했다.

오규석 기장군수는 “바다 밑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이 같은 구상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바다 밑 도시계획의 핵심은 ‘수중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테마별 수중공원 조성과 해조류 서식지 조성, 다양한 수중 스쿠버 행사, 수중 결혼식 등 친환경 관광개발을 통해 창조경제 실현은 물론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를 동시에 해결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군은 우선 기장 연안을 남부·중부·북부 3개 해역으로 설정하고 각 해역 주변 잠재력 등을 고려해 문화관광권역, 생태자연권역, 융합전원권역의 3개 개발권역으로 나누었다. 3개의 권역을 중심으로 어항구역 및 연안지선 일원을 ‘연안육역지구’, 수심 25m 이하의 해양 일원을 ‘연안해역지구’, 해저면(바닥) 일원을 ‘연안해저지구’의 3개 개발 용도지구로 구분했다.

또 권역별 3개 용도지구를 대상으로 해조산업 거버넌스 구축, 사계절 해수욕장 개발, 원자력 공원 조성사업 등 연안육역지구 12개 사업, 해양레포츠 공원 및 해중공원 조성(수중영화촬영소), 해상낚시 공원 조성 등 연안해역지구 11개 사업, 권역별 연안 해저지구에 바다숲길 조성·왕우럭특화단지 조성·해조류 군락단지 등 7개 사업을 도출해냈다.

군은 바다 밑 도시계획 우선사업으로 ‘바다목장 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총 150억원이 투입돼 바다숲, 생태자원조성장, 해조류 서식장 보호시설, 패류 방류, 해조류 이식 등의 사업을 추진 중이다.

육역구역 우선사업으로는 연안경관 개선 및 빛 테마공원 조성사업, 해안산책로 개설, 사계절 해수욕장 조성, 연안환경 정비사업 등을 추진 중이다. 특히 빛 테마공원 조성사업(해안 빛·로드 구축)은 빛을 이용해 기장연안 40.7㎞의 해안선 정비는 물론 빛을 테마로 야간 관광자원으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국비와 시비 등 1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되는 빛 테마공원 사업은 죽도 물양장과 대변항 멸치테마광장, 멸치·붕장어 특화거리 조성 등을 통한 상권 활성화가 기대된다.

바다 밑을 체계적으로 개발하는 이 같은 시도는 외국에서도 전무하다. 스웨덴 함마르비, 독일 메디언하펜, 일본 오사카 등지에서는 항구와 해안을 수변도시로 개발하는 도시재생프로젝트를 추진한 바 있다.

‘바다 밑 도시계획’을 추진 중인 군은 지난 20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제10회 장보고대상 시상식에서 지방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오 군수는 “바다의 난개발을 방지하는 것은 물론 효율적·합리적 관리시스템이 전국 해양관리 및 보전의 새 모델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해조류육종융합연구센터 김재경 감리단장 인터뷰

“‘바다 밑 도시계획’ 공사 현장에 직접 참여하게 돼 영광입니다.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도시계획 시설인 만큼 최선을 다해 건립하겠습니다.”

부산 기장군 일광면 이천리에 건립되고 있는 ‘해조류육종융합연구센터’ 김재경(60·사진) 감리단장은 28일 “국내 최고의 해조류 연구·개발 시설이 되도록 하겠다”며 이같이 다짐했다.

김해 가야테마파크 조성 사업과 전남 화순군 농어촌주택 개발 사업 등 전국의 굵직한 사업 현장을 누빈 김 단장이지만 국내 최초로 시도된다는 이유 때문인지 ‘바다 밑 도시계획’ 사업에는 더욱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김 단장은 “일본 등 해외에는 이와 비슷한 해양개발 사업이 있는 것으로 알지만 우리나라에는 처음 시도되는 사업인 만큼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김 단장이 맡고 있는 해조류육종융합연구센터는 기장지역 특산품인 미역과 다시마의 우수한 종묘를 연구·개발해 어민들에게 공급하는 곳이다. 센터가 들어설 이천리 이동마을 앞 바다는 청정해역인 데다 조류가 빨라 미역과 다시마 성장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해역으로 꼽힌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미역과 다시마가 왕에게 진상될 정도였다.

센터는 이곳의 해수를 육상의 종묘배양장으로 취수해 200여명의 연구인력과 함께 최고의 해조류 종묘를 연구·개발하는 곳이다. 기존 미역과 다시마의 전통 품종은 보존하고 기후변화에 따른 우량 신품종 연구·개발에 주력하게 된다. 국비와 시비 등 215억원이 투입된 센터는 지난해 초 착공, 현재 공정 90%를 보이고 있다. 다음 달 말 완공 예정이다. 부지 9637㎡, 연면적 7857㎡에 지하 1층, 지상 4층의 2개동으로 건립된다. 건물이 완공되면 우리나라 수산자원 조성 전문 공기업인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도 이곳에 입주할 예정이다.

김 단장은 “무분별한 개발과 장기간 방치 등으로 일부 바다가 황폐화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기장군의 바다밑 도시계획이 우리나라 모든 바다에 확대 적용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