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잃은 戰場 아이들 마음을 들어요

입력 2016-10-28 20:36 수정 2016-10-30 11:26
경기도 광주 영은미술관에서 서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돕기 위한 ‘움직일 動-함께 걷는 사람’ 전시를 열고 있는 진유영 작가.
미술치료 수업에 참여한 어린이가 그림을 그리고 색지를 붙이고 있는 모습.
북아프리카 A국 어린이와 여성들에게 미술치료 자원봉사를 해 온 재불 화가 진유영(70·파리침례교회 권사)은 행동하는 예술인이다. 그는 2005년 북아프리카의 A국에서 내전으로 가족을 잃은 아이들을 만났다. 아버지와 삼촌, 마을의 모든 남자들이 참수 당하는 끔찍한 현장을 목격했던 아이들은 트라우마로 언어를 상실하고 커다란 눈은 초점을 잃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거칠고 어두웠다. 붉은색으로 덧칠한 그림을 악몽처럼 꺼내 놓았다.

그는 미술치료를 통해 아이들의 잃어버린 언어와 상한 감정을 회복시켜주고 싶었다. 또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의 자유함을 찾아주고 싶었다. 국제 구호단체를 통해 1년에 한두 번, 한 달여 동안 머물며 30여명의 아이를 만났다. 그렇게 8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진 작가는 ‘창작엔 치유의 요소가 있다’고 믿었다. 아이들에게 긴 두루마리 종이에 편지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게 했다. 아이들은 감정을 상징하는 타다 남은 성냥개비, 예쁜 커피잔 사진, 헝겊 매듭 등을 종이에 붙이며 마음속 이야기를 꺼냈다.

“미술치료를 정식으로 공부하지는 않았지만 유학 시절 우울증으로 힘들었을 때 붕대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면서 회복의 실마리를 잡았던 것을 기억해 두루마리 편지 쓰기를 시도했어요. 두루마리 종이의 끝이 보일 무렵 아이들 표정이 밝아지고 말문을 열기 시작했어요.”

진 작가는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1969년 프랑스 국비장학생으로 유학을 간 뒤 한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중견작가다. 현재 ‘MY HEART 선교회’ 협력선교사다.

그의 아프리카 어린이 사랑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지금 경기도 광주 영은미술관에서 서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움직일 動-함께 걷는 사람’ 전시를 하고 있다. 모인 수익금 전액은 세네갈 모리타니 베냉의 천막에 사는 어린이들에게 교육과 의료 혜택을 주는 데 쓰인다.

지난 25일 미술관에서 만난 그는 “회화는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 아니라 실체를 만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품을 통해 ‘움직임(動)’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 주제도 이런 작업 과정에서 가져온 것이다.

“생명이 있는 것은 모두 움직입니다. 이 움직임은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무너뜨립니다. 사람의 마음도 움직입니다.”

이번 전시는 서아프리카 아이들을 만나기 위한 ‘참여예술’이다. 따라서 ‘아이들’은 ‘이미지’가 아니라 ‘실체’다. 작가는 실체를 찾아 서아프리카 아이들에게로 간다. 작가는 이 ‘사랑의 움직임’에 많은 사람의 참여를 바란다. 물질을 필요한 곳으로 흐르게 한다는 의미에서 이번 전시의 보이지 않는 주제는 ‘하나님의 공평’이다.

“사실 이번 전시의 보이지 않는 주제는 ‘하나님의 공평’입니다. 하나님의 공평은 사람들로 완성됩니다. 손과 발을 움직이는 사람들로 인해 하나님이 움직이십니다. 선한 곳으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사람들이 작품을 소유했다는 만족감보다 하나 되는 공동체의 기쁨을 소유하게 되길 바랍니다.”

전시장엔 서아프리카 어린이들 스케치드로잉 영상, 다양한 사이즈의 작품들로 구성된 ‘디딤-쇠소깍’ 시리즈 등 근작들을 만날 수 있다. 쇠소깍은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자연하천 이름. 이번 전시는 12월 11일까지 계속된다.

진 작가는 예술세계가 선교지라고 생각한다. “현대미술 전시들을 볼 때 섬뜩할 정도로 어둡고 침울할 때가 많아요. 흑암의 영이 덮어버린 것 같은 예술세계는 가장 치열한 선교지 같아요. 신앙을 가진 작가들이 그곳에 작품을 선교사로 파송해야 해요. 다양한 작품 속에 선하신 하나님의 관점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선교사 파송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보낼 때 선교사를 파송한다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자주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그분의 한계 없이 완전하신 자유를 묵상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영적인 한 세계를 포착하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광주=글·사진 이지현 선임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