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임모(21·여)씨가 크라우드펀딩 업체에 메일을 보낸 건 지난 2월이다. 손수 향수 제조법을 개발해낸 임씨는 공동구매 방식으로 제작을 진행하려다 여의치 않자 이 업체에 크라우드펀딩을 신청했다. 모금 기간은 최소인 1주일, 목표금액도 100만원 정도였다.
반응은 예상보다 폭발적이었다. 목표액의 6배 가까운 돈이 순식간에 모였다. 후원자는 200명을 넘었다. 홀로 자취방에서 기껏해야 서른 병 내외를 만들려던 임씨로서는 당황스러운 결과였다. 임씨는 마감 사흘 전 업체에 취소 의사를 밝혔지만 전산상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했다.
임씨는 좁은 공간에서 작업이 어려워 방을 새로 구했다. 애초 7월이 목표였지만 규모가 커진 이상 계획대로 진행하기는 힘들었다. 인건비도 추가로 들었다. 작업 특성상 아무나 고용할 수도 없었다. 대학원 진학에 쓰려던 돈 수천만원이 들어갔다. 후원자 중 일부는 환불이나 제조상 기밀 공개를 요구했다. 민원이 잦아지자 업체 역시 계약서에 없던 약관을 들먹이며 임씨를 탓했다. 임씨로서는 이를 수용할 경우 자칫 돈과 수개월간의 노력이 날아갈 처지다.
임씨 사례와 같은 분쟁의 원인은 이 같은 ‘선물형’ 크라우드펀딩이 제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 당국은 크라우드펀딩을 적극 키워나가겠다는 입장이나 물품을 제공하는 선물형은 해당되지 않는다. 실상 적용되는 건 전자상거래법이지만 이를 관할하는 공정위도 후원자 보호에만 초점을 맞췄다. 현재로선 업체가 제시한 약관이 갈등 조정 기준의 전부인 셈이다.
이 분야 전문가로 꼽히는 박지영 변호사는 “여태 투자자와 업체, 창작자 간 선의에 의존해 산업이 발전해 왔으나 앞으론 갈등이 커질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후원자는 홈쇼핑처럼 물품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창작자는 (환불 의무 없는) ‘투자’ 개념으로 인식해 괴리가 있다”면서 “합리적 사업진행을 위해서라도 법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비즈카페] ‘기준’ 시급한 선물형 크라우드펀딩
입력 2016-10-27 1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