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 에이스 제이크 아리에타(30)의 투구 동작은 역동적이다. 와인드업 자세에서 허리춤까지 바짝 움츠린 왼쪽 다리를 멀리 뻗으면서 마운드를 내딛는다. 발이 마운드에 착지할 때쯤 오른쪽 팔꿈치를 굽혀 공을 던진다. 공이 손을 떠나는 지점은 신장 193㎝인 아리에타의 머리보다 높다. 그래서 묵직한 공이 날아간다.
이런 개성 있는 투구 동작이 지금의 아리에타를 만들었다. 너무 큰 동작은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아리에타는 동작을 매끄럽게 만들어 구위를 높이고 부상을 줄이기 위해 연구하고 단련했다.
그는 처음부터 주목을 받은 투수는 아니었다. 메이저리그 데뷔 시즌인 2010년부터 컵스로 이적한 2013년 7월까지 활약했던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아리에타는 평범한 투수들 중 하나였다. 심지어 릭 어데어 투수코치와 불협화음까지 빚었다.
역동적인 투구 동작이 원인이었다. 어데어 코치는 교과서적인 투구 동작을 추구하는 올드스쿨 스타일이다. 정석에서 벗어난 동작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았다.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생각이면 떠나라’는 고압적인 태도까지 갖고 있었다. 아리에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리에타의 승률은 5할도 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 2년차였던 2011년 10승 8패를 찍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컵스로 이적한 뒤부터 아리에타의 야구인생은 180도 바뀌었다. 컵스의 크리스 보지오 코치는 어데어 코치와는 반대로 투수의 동작에 조금도 관여하지 않았다. 묵묵하게 관찰하면서 상담할 뿐이었다. 이런 자유분방한 지도 방식은 아리에타에게 딱 들어맞았다.
아리에타는 오른쪽 팔꿈치 위치를 내리고 왼쪽 어깨를 최대한 늦게 내밀었다. 세트포지션에서 곧바로 공을 던져 불필요한 동작을 없앴다. 상체와 엉덩이를 지연하는 동작으로 팔을 더 빠르게 휘두를 수 있었다. 투구 동작을 골프 스윙과 비교하면서 연구한 결과다. 그 결과 구속은 시속 2마일(3.2㎞)가량 더 상승했다.
아리에타는 컵스 1군에 본격적으로 합류한 2014년부터 매 시즌마다 두 자릿수 승리를 수확하는 에이스로 성장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보낸 8시즌 동안 정규리그 통산 승리(74승)의 70% 이상을 컵스에서 수확했다. 올 시즌 정규리그 18승 8패 평균자책점 3.10. 아리에타는 이제 제1선발 존 레스터와 함께 컵스의 마운드를 이끄는 ‘원투펀치’다.
아리에타는 생애 처음으로 밟은 월드시리즈 마운드에서 감격적인 1승을 올렸다. 아리에타는 27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열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월드시리즈 2차전 원정경기에서 컵스의 선발로 등판해 5⅔이닝을 2피안타 3볼넷 1실점으로 막았다. 몇 차례 위기는 있었지만 아웃카운트 16개를 잡는 동안 단 1개의 안타도 허용하지 않은 노히트 쇼를 펼쳤다. 6회말 1사에서야 제이슨 킵니스에게 2루타, 2사에서 마이크 나폴리에게 1루타를 허용했다. 이 과정에서 폭투로 킵니스를 홈으로 불러 실점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아리에타에게서 마운드를 넘겨받은 마이크 몽고메리를 시작으로 컵스 불펜은 나머지 3⅓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컵스는 5대 1로 승리했다.
프로그레시브필드의 기온은 초겨울처럼 쌀쌀한 6도였다. 아리에타는 컵스이 공격 때마다 더그아웃에서 손을 비비며 대기해야 했다. 아리에타는 경기를 마치고 “손가락 끝에서 감각이 사라지지 않도록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사이사이에 트레이닝용 실내자전거를 타거나 벤치 주변을 서성이면서 몸 상태를 유지했다”고 말했다.
아리에타의 승리는 컵스가 월드시리즈에서 2만5952일 만에 수확한 1승이다. 컵스는 1945년 이후 71년 만에 월드시리즈로 진출했다. 마지막 우승은 1908년으로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오랫동안 우승하지 못한 팀이다.
월드시리즈 초반 원정 2연전에서 1승1패로 균형을 맞춘 컵스는 29일부터 사흘 동안 일리노이주 시카고 리글리필드로 클리블랜드를 불러 홈 3연전을 갖는다. 컵스는 홈 3연전에서 모두 승리하면 리글리필드에서 우승을 자축할 수 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저주 깨기’ 장군멍군
입력 2016-10-28 0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