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유장춘] 평화를 위한 편들기

입력 2016-10-27 19:11

평화를 교육하기 위한 원칙에는 ‘당파성을 갖도록 훈련하는 것’도 있다. 흔히 평화를 이루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가운데 서거나, 양쪽 모두에게 좋은 관계를 가지거나, 그게 아니라면 양쪽 모두에게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구겔과 랑에펠트아안의 평화교육 7원칙 중 하나는 한쪽 편들기가 있다. 그런데 그 한쪽 편은 약자의 편이다. 약자를 편드는 것이 평화를 이루는 길이라는 사실. 불행하게도 세상은 강자를 편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서 세상은 늘 평화롭지 못하다.

우리가 약자를 편들어야 하는 이유는 강자의 독점을 막기 위해서다. 독점은 그 무엇이든지 나쁜 것이다. 독점은 평안을 깨뜨리고 평화를 잃게 한다. 권력을 독점하고 언론과 재화를 독점하는 것만 나쁜 것이 아니라 애국이나 정의를 독점하는 것도 나쁘다. 완장 두르고 우리만 애국한다는 듯이 태극기 높이 들고 소리 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상당히 혐오스럽다. 또 사랑이나 진실과 선을 독점하는 것 역시 나쁜 것이다. 우리만 선하고 너희는 악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비교적 선한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왠지 정이 가지 않는다. 심판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종종 선거에서 깨지는 이유가 그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심지어 복음이나 축복조차도 독점해서는 안 된다. 우리만 진리를 갖고 있다든지, 우리만 복을 받았다든지, 우리만 구원을 얻을 것이라든지…. 복음을 독점하는 사람들이 이단이다. 한 가지만 독점해도 나쁜 것인데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독점하는 사람은 더 추악해진다. 북쪽에 있는 그 누구는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기에 그야말로 국제적인 비난을 면치 못한다.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권력을 독점하고 위세를 부리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수세에 몰리고 있다. 무너지는 소리가 아주 요란하게 들리고 그 파편들이 어지럽게 터져 나오고 있다. 사회가 너무 어지럽다. 그들이 무너지는 것은 하나도 걱정되지 않는데 정작 걱정스러운 것은 그들을 공격하고 무너뜨리는 사람들이다. 그 주장하고 비난하는 가운데서 정의를 독점한다든지 여론을 독점한다든지, 심판을 독점하는 일들이 생기게 되면 심성이 따듯한 우리네 백성들이 마땅히 물러나야 할 사람들을 편들어 또다시 그 독점적 권력과 지위를 유지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가 여러 번 있었지 않은가. 그들은 빠져나가는 방법을 잘 안다. 분명히 심판을 받아야 할 짓을 저질렀지만 지팡이 높이 들고 심판하자고 나서는 사람들 앞에서 죽는 시늉을 하고 불쌍하게 보이기만 하면 우리 민중들은 살려주고 세워줬던 것이다. 결국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들은 여전히 승승장구하게 마련이다.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성경은 이렇게 권면한다.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정작 들어다봐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이다. 나는 얼마나 신령한가 하는 것이다. ‘신령하다’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식해야 한다. ‘하늘을 우러러’보며 나 자신을 검토해야 한다. 그럴 때에 ‘저 사람들’의 잘못이 ‘우리’의 잘못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가 잘못 세웠고, 우리가 잘못 따라갔고, 우리가 잘못 권한 부여했던 것이다. 그럴 때에 ‘온유한 심령’이 가능해진다. 따듯하고 부드럽고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렇다고 덮어주고 모른 체 할 수는 없다. 바로잡아야 할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잘못된 점은 밝혀야 하고 진실은 드러나야 한다. 책임질 사람들은 책임지게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일이다.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도록 구조를 만들고 조심 또 조심하는 것이다. 성경은 그렇게 말한다.

유장춘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