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직격 인터뷰-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대·중소기업 상생, 사회 문화로 정착시켜야”

입력 2016-10-27 20:06 수정 2016-10-28 00:15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이 지난 20일 서울 중구 공정거래조정원에 있는 집무실에서 국민일보와 경제민주화, 재벌 일감 몰아주기 등 현안에 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은 선이 굵은 편은 아니다. 스타플레이어는 아니지만 기본기에 충실해 팀에는 꼭 필요한 스타일이다. 정 위원장은 취임 후 2년간 묵묵히 공정위를 안정적으로 이끌어왔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공정거래조정원에서 경제민주화 주무부처 수장으로서 소회와 앞으로 공정위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방향을 들어봤다.



-오는 12월 5일이면 취임 2주년이 된다. 그동안 소회와 남은 임기 역점을 두고 추진할 사안은 무엇인가.

“경제민주화가 가시적 성과로 시현되기 위해 노력했다. 공정위 소관인 경제민주화 14개 국정과제 중 9개는 입법화돼 집행 중이고 5개 과제는 다시 법안으로 추진하려고 한다. 통과된 9개 과제 중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대·중소기업 상생이었다. 일반 국민은 총수일가 사익편취에 더 관심이 많을 것이다. 4대그룹 등 대기업 조사가 없었다지만 4대그룹 계열사들이 포함된 조사와 시정 조치는 많았다. 상대적으로 4대그룹만 특별하게 한 게 없지만 성역 없이 조사했다.”



-경제민주화가 헛구호라는 야당 비판이 있다.

“야당의 경제민주화와 정부가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는 핀트가 안 맞는 것 같다. 야당은 최저임금, 노사 문제까지 범주에 넣는 것 같고 저희는 대·중소기업 상생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정위원장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순 없다. 다만 공정위에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평가는 기대치에 부합하는데 기대가 크면 평가가 낮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요즘 가장 중점적으로 보고 있는 사안은.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 관행 개선이다. 다른 분야는 문제가 있어도 당장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런데 대·중소기업 문제는 해결이 안 되고 적체되면 우리 경제를 한꺼번에 주저앉혀버릴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삼성 갤럭시 노트7 리콜 사태는 경종을 울리는 사례가 될 것이다. 그런 사태가 터진 것은 불행이지만 앞으로 대기업들이 ‘아, 우리만 열심히 가면 되는 게 아니구나. 협력업체가 같이 가줘야겠구나’란 생각을 하게 만든 것 같다. 대·중소기업 간 상생이 안 되면 국가경쟁력이 엄청나게 떨어진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수출해서 먹고사는 경제일수록 신뢰에 금이 가면 치명타다.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에 대금 제대로 주고, 단가 후려치지 않고 같이 공생해야 한다. 상생 문화로 정착돼야 한다. 그러면 공정거래 위반의 절반은 해소될 것이다. 위원장으로 있는 동안은 계속 대·중소기업 상생 쪽에 총력을 기울이겠다.”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시행된 지 2년이 됐다. 지분율 30%(비상장사 20%) 이하 기준 때문에 주요 대기업들이 29.99%로 지분을 낮추는 식으로 빠져나간다는 지적이 많다. 법 개정의 필요성은 없나.

“야당에서 개정 주장 나오는데 이제껏 처리한 사건이 2건뿐이다. 얼마 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개정하자 말할 수는 없다. 아직 검증이 안 된 상태다. 무조건 법만 개정해서 처벌 세게 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뭣이 중헌지’ 아직 모르는 상태다. 사건 피드백된 것도 거의 없다. 일부에서는 간접지분을 넣자, 친족기업도 포함시키자 등 의견 나오지만 문제점이 많다. 기준을 어떻게 정해도 그 언저리에 있는 기업은 다 빠져나간다. 규제의 기준도 중요하지만 효율성도 따져야 한다. 법 집행 성과, 기업행태 변화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서 보완 여부를 검토해나가겠다.”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에서 아직까지 오너일가 고발이 없다.

“지난번 현대 건은 총수일가가 관여한 증거를 못 찾았고, CJ 건은 개정법률 시행 전 위반행위가 완료됐다. 앞으로는 그런 증거가 있으면 처벌해서 경종을 울리는 노력을 많이 하겠다. 국민들이 공정위에 거는 기대는 큰데 인력과 물리적 한계가 많다. 총수일가 관련 연관성을 찾으려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그야말로 은밀하게 해야 한다. 담합은 여러 명이 하니 배신자가 나올 수 있는데 총수일가의 지시받는 사람은 최소한 측근이나 핵심 사장들이다. 그 사람들은 영원히 입 다물 사람들이다. 몇 억원씩 연봉을 받다가 그만두고 나와도 2∼3년간 몇 억원씩 또 연봉 주지 않나.”



-향후 일감몰아주기 조사 계획은.

“2년 전 최초로 41개 기업집단의 내부거래 자료를 다 받았다. 제일 공부 못하는 친구들이 하는 버릇이 모든 과목 다 펴놓고 공부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한진 등 5개 기업을 추려내 조사했다. 나머지 기업 중에도 법 위반 사안이 숨어 있을 것이다. 순차적으로 할 것이다. 가시적 성과가 나오고 경종을 울려야 해서 5개 그룹 먼저 1차 조사를 한 것이다. 이 건이 마무리한 뒤 2차 조사에 나설 것이다.”



-네이버 등 대형 포털의 불공정행위 논란이 또 불거졌다. 중소상공인에 대한 갑의 횡포와 골목상권 문제도 걸려 있다.

“네이버 등 대형 인터넷 포털 사업자의 경우 국내 검색 서비스, 전자상거래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언론사 기사 계약에 따른 수익배분 문제는 직접적으로 나서 공정거래법 잣대를 들이대긴 쉽지 않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네이버가 불공정거래를 한 부분이 구체적으로 있다면 조사해서 제재를 해야 한다. 계속 모니터링 중이다. 카카오가 대리운전, 배달업 등까지 침투한 문제는 어렵다. 대기업들이 골목상권까지 침투하느냐는 도덕적 비판은 가능하다. 하지만 법의 잣대를 들이대면 위법이 아닌 경우가 많다. 독과점 측면으로 제재하려면 1등 업체가 시장점유율 50% 이상이거나 상위 3개사가 75%를 넘어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수준은 아니다.”



-현대차 리콜 사태를 포함해 다국적기업이 국내 소비자를 무시하고 다른 나라들과의 차별적 행태를 보인다는 지적이 있다.

“현대차 부품 차별 문제는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만든 환경하고 우리 공장하고 환경이 다르다고 하더라. 공정위는 기업 법 위반 사안이 발생하면 국적에 관계없이 엄중 조치한다. 우선 소비자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면 소비자원이 리콜 권고를 하고, 그게 충분치 않으면 공정위가 직접 소관부처에 리콜 요청을 할 것이다. 소비자 기만행위나 권익침해 문제는 적극 대처하겠다.”



-건설 담합이 고질병이다. 또 대부분 공공입찰에서 담합이 이뤄져 국민의 혈세가 나간다. 해결방안은 없나.

“큰 숙제다.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적으로 합의가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공정위가 근절하는 방법이 그 기업이 망할 정도로 과징금을 부과하면 다시는 안 하지 않겠나. 맞는 말인데 부작용이 너무 크다. 그 기업 망해버리면 협력업체 수백개가 다 같이 망한다. 더구나 과징금 부과한 게 법원 가서 자주 깨진다. 담합에 대한 국민적 총화가 안 모아진 게 아닌가 싶다. 우리 중소 건설사들이 대부분 특정 대기업에 예속돼 있다. 담합 조사하면 이런 이해집단이 읍소를 해온다.”



-공정위는 한 지붕 두 가족 체제다. 불공정행위를 조사하는 사무처와 이를 심의하는 위원회를 분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분리되면 현 공정위가 일하는 것의 효율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검찰하고 법원처럼 되는 것인데 사건 처리가 더욱 늦어질 것이다. 유럽연합(EU)이나 일본 등 선진국 모두 우리와 같은 시스템이다. 효율성 측면에서 현 체제가 더 낫다.”d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