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거짓말의 운명

입력 2016-10-27 19:11

몇 년 전 제주도에서 겪은 일이다. 하루 종일 구경 다니다가 해가 저물어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빌린 차로 낯선 곳의 도로를 달려야 했으므로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고 있었다. 예상보다 교통정체가 심해 친구와 나는 숙소에 돌아가서 저녁을 먹기로 한 계획을 바꾸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제주도 중문 맛집’을 검색했고, 갈치조림인지 해물뚝배기인지가 유명하다는 식당 하나를 골랐다. 내비게이션에 상호를 입력하자 위치를 금세 확인할 수 있었다.

직진하라면 직진, 좌회전하라면 좌회전, 우회전하라면 우회전하면서, 경로 안내를 따라 달렸다. 달리면서 좀 의아했던 것은 바닷가 방향인 시내로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점점 산 쪽을 향하는 것이었다. 친구도 나도 계속 이상하다고 중얼거렸지만 설마, 설마 하면서 가라는 대로 갔다. 마침내 가로등도 없는 비탈길을 지나 막다른 곳에 이르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그곳에는 철조망 울타리와 쇠창살문이 있었고, 공원묘지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친구와 나는 얼굴을 마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너무 빤해서 하나도 무섭지 않은 귀신얘기 같은 일이었다. 내비게이션이 거짓말을 하다니. 차가 산 속으로 자꾸 들어갈 때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방향을 바꾸지 못했다. 사람이 속을 때는 꼭 귀신에 홀린 듯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자꾸 따라가게 되는 법이니까.

거짓말이 전염병처럼 창궐하는 세상이다. 알면서도 속아줘야 뒤탈이 없을 것 같아 끌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거짓말과 참말의 경계도 아리송해진다. 하지만 거짓말은 분명 거짓말이다. 아주 단순하다. 왼쪽인데 오른쪽이라고 하면 그게 바로 거짓말이다. 말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고가는 것이니, 말의 운명과 사람의 운명은 동일할 수밖에 없다. 거짓말이 참말을 밀어내고 주도하는 순간부터 세상은 다른 쪽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모르는 체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절벽 끝에 다다를 것이다.

글= 부희령(소설가), 삽화=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