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희 “블랙리스트 보니 아직 할 일 많아” 이양구 “검열은 결국 문화의 다양성 말살”

입력 2016-10-27 18:07 수정 2016-10-27 18:09
‘권리장전2016-검열각하’ 페스티벌의 예술감독 김수희(왼쪽)씨와 발기인을 대표하는 이양구씨. 26일 서울 종로구 연우소극장 앞에서 만난 이들은 “페스티벌은 끝나가지만 검열 문제는 진행중이다. 우리 젊은 연극인들은 앞으로도 검열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적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이동희 기자

연극계 검열, 연극으로 저항한 ‘검열각하’ 페스티벌… ‘대한국사람’ 끝으로 대단원

한국 연극계는 지난 몇 년간 ‘검열’ 파문으로 시끄러웠다. 이윤택 박근형 등 중견 연극인들이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했거나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 심사에서 떨어진 것이다. 또 현 정권에 비판적인 서울연극협회 주최 서울연극제가 극장 대관 심사에서 떨어졌으며, 세월호와 관련됐다는 이유로 다원예술 ‘안산순례길’ 역시 지원에서 배제되거나 공연에 어려움을 겪었다.

연극계에서 검열을 비판하는 성명서를 내거나 토론을 열기도 했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젊은 연출가들은 연극인답게 연극을 통해 검열을 비판하기로 했다. 지난 6월 초 개막해 5개월간 열린 ‘권리장전2016-검열각하’ 페스티벌이 그것이다. 21개 극단이 참가해 22편을 매주 차례로 올린 페스티벌이 극단 공상집단 뚱딴지의 ‘대한국사람’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인 극단 미인의 김수희씨와 발기인을 대표하는 극단 해인의 이양구씨를 26일 서울 종로구 연우소극장에서 만났다. 이들과 페스티벌을 되짚어봤다. 김씨는 “검열 문제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최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보면서 아직도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밝혔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명단에는 세월호 시국선언에 참여했던 예술가들,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 또는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예술가들이 대거 포함돼 있었다. 세월호를 다룬 연극 ‘노란 봉투’로 서울연극제 우수상을 수상했던 이씨 역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씨는 “블랙리스트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근간을 파괴하는 것이다.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고 문화의 다양성을 말살하는 검열은 결국 파시즘으로 귀결된다”고 비판했다.

지난 5개월간 22명의 연출가를 비롯해 200명 가까운 배우, 스태프, 기획자가 악조건 속에서도 헌신한 덕분에 페스티벌은 무난하게 진행됐다. 그러나 이번 페스티벌이 연극계를 넘어서까지 폭넓은 공감을 얻었는지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씨는 “연극인들의 일하는 방식이 조직적이지도 세련되지도 못한 부분이 많다. 또 작품의 질적인 부분에서 검열이라는 강력한 주제에 대해 좀더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했다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이번 페스티벌을 통해 젊은 연극인들이 사회적 문제를 놓고 토론하며 성장했고, 연대와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큰 수확”이라고 답했다.

그동안 검열 파문에 대해 연극계 전반의 상황 인식이나 대응이 늦었던 것을 반성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이씨는 “그동안 정부 지원금에 너무 의존하다 보니 체제에 순응한 채로 흘러왔다. 선배들은 권력에 저항하기보다는 연극계의 파이를 키우는 것을 더 중시했다. 검열에 원로 연극인들이 나서지 않는 것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면서도 “이번 페스티벌이 젊은 연극인들에게 잊지 못할 체험으로 남아 기존 한국 연극사와 다른 길을 걷게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사진=이동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