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崔, 2007년 朴 경선 패배 후 ‘메시지’ 손대기 시작

입력 2016-10-27 04:04
검찰 관계자들이 26일 서울 강남구 미르재단 사무실에서 압수한 물품을 차량에 싣고 있다. 이병주 기자

박근혜정부 ‘비선실세’로 부각된 최순실(60)씨는 수십 년 동안 박근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지위를 ‘지인→의상 코디네이터→국정운영 동반자’로 격상시켜온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과 사정 당국 관계자들은 최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수정하고 국정운영에 개입하는 핵심 실세로 부각된 시기를 2007년 한나라당의 대선후보 경선 이후로 추정한다.

국민일보가 26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메시지팀’에 참여했던 캠프 및 청와대 관계자들을 취재한 결과, 2007년까지만 해도 최씨는 연설문 작성 및 수정에 거의 개입하지 못했다. 정치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후보의 연설문 등 대외메시지 작성은 참모 역할을 맡은 국회의원들이 주관했다. 몇몇 의원이 주축이 돼 메시지팀을 이끌었고, 연설문 주제에 따라 분야별 회의를 거쳤다. 연설문에 담을 내용이 정리되면 조인근 당시 메시지팀장이 초안을 완성했다. 완성된 초안은 다시 의원들에게 보고됐다. 이후 정호성 비서관을 거쳐 박 후보에게 전달됐다. 박 후보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택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았고 팩스를 이용해 연설문을 보냈다고 한다.

연설문을 받은 박 후보가 ‘피드백’을 주기까지 걸린 시간은 매우 짧았다. 내용을 수정하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고 한다. 당시 캠프 관계자는 “메시지팀이 연설문 초안을 보내면 피드백을 받는 데까지 보통 30분 정도 걸렸고, 길어야 1시간에 불과했다”면서 “물리적으로 누군가에게 연설문 초안을 보내 검토하도록 할 시간이 없었다”고 말했다. 연설문 전달에 팩스를 사용했고, 정 비서관까지 거쳤던 상황을 고려하면 박 후보가 직접 연설문을 검토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또 “박 후보를 거친 연설문 초안이 크게 바뀌는 경우도 없었다”면서 “주로 박 후보 의중이 반영된 특정 단어 몇 개, 혹은 일부 문장을 삭제하는 수준에서 수정이 이뤄졌고 큰 틀에서 초안은 그대로 유지됐다”고 덧붙였다.

다만 당시 캠프 관계자들은 박 후보 의상이나 액세서리 등을 전담하는 ‘제3의 인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캠프 관계자는 “박 후보의 옷과 가방, 액세서리 등은 기성제품이 아닌 맞춤형 제품이었다”면서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인물이 있다는 것을 짐작하고 있었지만 그게 최순실씨인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최씨의 역할은 한정돼 있었고, 캠프 내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을 만큼 위상도 높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박 후보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패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2008년 이명박정부가 들어서자 박 후보는 2011년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에 임명될 때까지 약 4년간 사실상 정치적 휴지기를 갖는다. 캠프가 해산되면서 박 후보를 위해 메시지 작성 등을 돕던 의원들도 모두 흩어졌다.

반면 최씨는 경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박 후보의 곁을 지켰다. 당시 은둔 중이던 박 후보의 곁을 지킨 것은 결국 최씨와 정호성 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이었던 셈이다. 이때 최씨는 공백이 생긴 메시지 관련 업무 등에 광범위하게 관여하면서 영향력을 키운 것으로 추정된다. 박 후보가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최씨의 입지와 역할은 더욱 강화됐고,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위치를 확보했을 가능성이 크다.









노용택 기자 nyt@kmib.co.kr, 사진= 이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