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김혜림] 더 이상 침묵해선 안 된다

입력 2016-10-26 18:58

문화예술계가 성희롱 사건으로 시끄럽다. ‘최순실’ 사태와 견줄 바는 못 되지만 한 개인의 삶을 피폐하게 한다는 점에서 성희롱 사건은 외면하고 말 일은 아니다.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것이 곪을 대로 곪아서 고름을 쏟아내고 있다. 소설가와 편집자, 시인과 작가 지망생, 큐레이터와 예술대학생…. 문화예술계의 성추행도 사회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권력을 갖고 있는 ‘남성’이 저항할 힘이 없는 ‘여성’을 대상으로 행해졌다.

작가 박범신은 성희롱 사건이 불거지자 자신의 트위터에 사과랍시고 이런 글을 올렸다. “스탕달이 그랬듯 ‘살았고 썼고 사랑하고’ 살았어요. 오래 살아남은 것이 오욕∼죄일지라도… 누군가 맘 상처받았다면 나이 든 내 죄겠지요. 미안해요∼.” 시적인 문체와 빛나는 감수성을 인정받는 작가다운 필치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기보다 그저 나이 탓으로 눙치고 있다. 비판이 거세지자 사과의 글을 다시 올렸다. “…생애를 통해 나로 인해∼ 맘 다친 모든 분들께도 아울러 사과드려요. 본의는 그것이 아니란 말조차 부끄러워 못 드려요….” 장난기가 느껴지는 ‘∼’, 본의는 아니라는 발뺌. 진중함 없는 사과문에 이어 장편소설 출간을 미뤘다. 하지만 그는 대만에서의 활동은 예정대로 한다고 한다. 소나기는 잠시 피해간다는 식이다.

더구나 그 소나기를 가려줄 우산까지 나타났다. 성희롱 현장에 있던 방송작가가 “실제로 그런 일(성적 수치심을 견뎌야 하는 일)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또 다른 이는 “그날 선생님과 손을 맞잡고 얼싸안은 것 외에는 그분이 말씀하신 그런 행동은 저와는 어떤 것도 없었다”면서 불쾌해했다. 급기야는 성희롱을 폭로한 여성이 동석한 여성들에게 사과했다. 두 여성은 박범신의 신체 접촉을 친분 표시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친밀한 관계 때문일 수도 있고, 남성 중심 사회에 적응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그 속내는 짐작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것은 한 여성은 성적인 수치심을 느꼈으나 침묵했다. ‘회사를 그만둘 수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그 여성은 ‘그 회사를 그만두었고 다른 출판사도 다니지 않게 된’ 뒤에야 비로소 성희롱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나도 전에 이러저러하게 당했다’는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성희롱이 공론화된 것은 20여년 전이다. 1993년 서울대 조교였던 우모(당시 24세)씨가 ‘담당교수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며 신모(51) 교수와 학교, 국가를 상대로 5000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했다. 국내 최초의 직장 내 성희롱 소송이다. 6년여를 끌던 재판은 1999년 우씨의 손을 들어줬다. 성희롱이란 개념조차 희박한 때 우씨의 용기로 성희롱은 사회문제화됐고 관련법도 제정됐다. 하지만 아직도 ‘친분 표시’라는 탈을 쓴 성희롱이 많은 여성을 괴롭히고 있다.

작가회의는 작가들에게 “차제에 우리 모두 반구(反求)하는 마음으로 다시금 옷매무새와 마음가짐을 가다듬어주길 당부드린다”고 했다. 우씨의 재판을 지켜본 한 여기자로서 여성들에게 당부하고 싶다. 성희롱 현장에서 입을 열라고. 용기를 내라고! 부적절한 언행 앞에서의 침묵은 ‘그것이 성희롱인 줄 몰랐다’는 가해자의 변명을 정당화해줄 뿐이다.

불편한 상황이 연출되면 살짝 미소 띤 얼굴로 이렇게 말하시길. “이거 성희롱인데요. 기분이 별로입니다.” 성희롱 의도가 없었다면 충고로, 엉큼한 마음을 먹고 있었다면 따끔한 일침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게 직언해주는 것이 상대방에게도 도움이 된다. 제2 제3의 박범신, 성추행으로 국제적 망신을 산 제3 제4의 윤창중이 되지 않도록 도와주는 예방주사가 될 것이므로.

김혜림 산업부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