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패닉에 빠졌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가 “전혀 근거 없는 의혹”이라고 일관되게 부인한 ‘봉건시대에도 없었던 일’이 연일 사실로 드러나면서 국민들의 좌절감과 배신감은 하늘에 닿았다. 문제는 국민들을 놀라게 할 메가톤급 사안들이 앞으로 또 얼마나 터져 나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국민적 분노가 언제 행동으로 폭발할지 가늠하기 어려운 폭풍전야다.
박 대통령의 영혼 없는 사과가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었다. 인터넷 등에선 차마 입에 담기조차 참담한 ‘탄핵’ ‘하야’라는 단어가 검색어 1, 2위를 기록했다. 인터넷에서 활동 중인 ‘박근혜탄핵추진위원회’, ‘박근혜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회원수도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비록 아직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야당 내에서 하야 및 탄핵론이 제기되고 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책임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한 대통령에게 있다.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가 대통령 관심사항을 추진할 때 최순실한테 물어보고 했다는 증언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대통령도 의견을 물어보는 마당인데 아랫사람이야 오죽했을까. 국정을 담당하는 공적 시스템은 한낱 핫바지에 지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의혹이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달 “이런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리고 얼마 뒤엔 “가뜩이나 국민의 삶의 무게가 무거운데 의혹이 의혹을 낳고 그 속에서 불씨는 커져가는 현 상황에 제 마음이 무겁고 안타깝기만 하다”고 격정을 토로했다. 대통령 비서실장도 모르는 비밀이 조만간 밝혀질 것으로 생각했으면 결코 할 수 없는 말이다. 대통령이 국민을 기만한 셈이다.
박 대통령은 정윤회 문건 파동 때와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 사건 때도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이라며 책임자 처벌을 강도 높게 지시했다. 그 결과 한 사람은 감옥에 갔고, 또 한 사람은 옷을 벗었다. 이와는 도저히 비교가 불가능한 엄청난 일을 박 대통령은 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이 책임을 어떻게 질 건지 한마디 말이 없다. 새누리당이 요구한 청와대·정부의 전면적 인적 쇄신만으로는 한계점에 다다른 국민의 분노를 달래지 못한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정점에 다른 사람도 아닌 박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이 책임지지 않는 어떤 수습책도 미봉이고,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
내려놓겠다는 대통령의 열린 자세가 절실하다. 검찰 조사를 모른 척 할게 아니라 먼저 자청하고 나서는 모습을 보이는 게 좌절하고 실망한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항간에선 세월호 사건 당시의 ‘사라진 7시간’이 다시 회자되는 등 온갖 설들이 난무하고 있다. 하지만 근거 없는 낭설로 치부하기엔 상황이 너무도 엄중하다.
이미 국민의 신뢰를 상실한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이 혼돈을 수습해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보통사람들 사이에 “진짜 대통령은 최순실”이라는 얘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오르내리고 있다. 국민들이 대통령의 리더십 붕괴를 넘어 리더십 부재를 걱정해야 하는 상태인 것이다. 박 대통령의 임기는 아직 1년4개월이나 남았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 작금의 비정상을 방치할 수는 없다.
정치권에서 거국중립내각을 구성해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대통령 하야나 탄핵 같은 최악의 헌정중단 사태를 피하고, 그나마 남은 임기 동안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다. 현재로선 이보다 나은 수습책을 찾기 어렵다. 거국중립내각에 정부를 운영하는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해 무너진 국가 리더십을 복원하는 게 시급하다. 박 대통령이 그나마 명예를 지킬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좌고우면할 시간이 없다.
[사설] 신뢰 잃은 ‘박근혜 리더십’ 대안 마련 한시가 급하다
입력 2016-10-26 1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