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덴마크는 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일까

입력 2016-10-27 20:18
좋은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따스하고 편안한 시간. 이 시간을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덴마크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바로 ‘휘게’다. 휘게는 덴마크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위즈덤하우스 제공
“크리스마스를 눈앞에 둔 어느 12월, 나는 친구 몇 명과 어느 오래된 통나무집에서 주말을 함께 보낸 적이 있다… 산행 후 피곤했던 우리는 하나같이 두툼한 스웨터를 걸치고 모직 양말을 신은 채 벽난로 주위에 둘러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스튜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소리와 벽난로에서 불똥이 타닥 거리는 소리, 누군가 홀짝홀짝 따뜻하게 데운 멀드 와인을 들이켜는 소리 뿐이었다. 그때 한 친구가 이렇게 운을 뗐다. ‘과연 이보다 더 휘겔리할 수 있을까?’”

휘겔리하다고? ‘휘겔리(Hyggelig)’는 ‘휘게(Hygge)’라는 단어의 형용사형이다. 휘게와 휘겔리는 덴마크 사람들이 가장 자주 쓰는 말 중 하나라고 한다. 예컨대, 구글에서 덴마크어로 ‘아름다운 식당’을 입력하면 7000건의 문서가 검색되고, ‘고급 식당’은 9600건, ‘저렴한 식당’은 3만6000건이 나온다. 그런데 ‘휘겔리한 식당’을 쳐보면 8만8900건이 검색된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잠옷을 입고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보는 것, 좋아하는 차를 마시면서 창가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는 것, 여름휴가 기간에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모닥불을 피우는 것 모두 휘게다.”

덴마크 사람들이 가구와 인테리어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도 휘게 때문이다. 휘게가 이뤄지는 핵심 공간이 바로 집이다. ‘휘게스툰(휘게의 시간)’, ‘휘게크로그(휘게를 위한 아늑한 구석자리)’, ‘프레다스휘게(금요일의 휘계)’, ‘쇤다스휘게(일요일의 휘게)’ 등 휘게 용어도 발달했다. ‘휘게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나 지금 ‘휘게예네트’해”라고 말하며, “우리는 몇 시간 동안 ‘휘게스나크’를 가졌다”는 말은 ‘민감한 사안은 건드리지 않는 잡담이나 친밀한 대화’를 나눴다는 의미다.

코펜하겐에 위치한 행복연구소의 CEO인 마이크 비킹은 덴마크 사람들의 생활방식을 ‘휘게 라이프’로 정의한다. “덴마크 사람들은 늘 휘게에 정성을 쏟고, 휘게를 덴마크 문화 정체성의 본질적 특성이자 국가 DNA의 핵심적인 부분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행복, 삶의 질 등을 연구하는 마이크 비킹은 ‘휘게 라이프’라는 책에서 덴마크의 휘게 스타일을 소개하는 한편 덴마크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된 이유가 바로 휘게에 있다고 주장한다. 행복과 관련한 여러 조사에서 덴마크가 늘 1등으로 꼽혀온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그 이유로는 국가의 부, 안정적인 사회복지 모델, 청렴한 정치, 높은 신뢰도 등이 주로 거론돼 왔다. 여기서 마이크 비킹은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다른 북유럽 국가도 덴마크와 비슷한 수준으로 부유하고 복지 제도가 잘 갖추져 있는데 왜 덴마크가 늘 1등인가?

저자는 “덴마크가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휘게일 것”이며 “덴마크식 행복의 비결 가운데 관심을 받지 못한 요소가 바로 휘게”라고 말한다.

휘게를 정확히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어떤 정취나 경험, 느낌, 스타일 등을 표현하는 말이다. 휘게는 ‘친밀감을 자아내는 예술’ ‘마음의 안락함’ ‘짜증스러운 일이 없는 상태’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들을 즐기는 일’ 등으로 설명돼 왔다. 휘게는 웰빙이나 슬로 라이프와 유사한 느낌을 준다. 단순한 것, 느린 것, 오래된 것과 가깝지만, 느슨함, 친밀감, 포근함 같은 요소도 필수적이다.

그런데 휘게가 어떻게 행복과 연관된다는 것일까? 휘게는 덴마크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구, 이웃과 관계를 맺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보내는 따스하고 편안한 시간. 휘게는 바로 이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덴마크 사람들의 가치관과 기술, 열정 등을 표현하는 말이다.

저자는 “기본적인 생활 요건이 충족된 후에는 행복은 소득보다는 인간관계의 질에 더욱 크게 좌우된다”는 ‘세계행복보고서’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친밀한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행복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것이 행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