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은 18대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던 2012년 12월 28일 처음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독대했다. 차기 대통령 당선인과 현직 대통령은 오후 3시 전후부터 40여분간 배석자 없이 대화를 나눴다. 회동 내용은 당시 당선인 대변인이었던 조윤선 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약 3분 동안 간단히 브리핑했다.
25일 JTBC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당일 오전 10시58분 회동 시나리오를 미리 받아봤던 것으로 나타났다. 시나리오는 마지막 수정 시간이 6시간 빠른 오전 4시56분이었다. 빠르면 회담 10시간 전부터 어떤 내용이 논의될지 알고 있었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당시 시나리오는 모두말씀과 현안말씀, 언론인터뷰, 마무리 말씀으로 구성돼 있었다. 모두발언을 제외하고는 지금까지도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내용이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국채 발행의 필요성을 이 전 대통령에게 강조했지만 이 내용은 사후 브리핑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특히 이보다 훨씬 민감한 남북관계 관련 사안도 유출된 문건에 포함돼 있었다. 국가기밀이 사실상 최씨 손에 고스란히 넘어갔던 것이다. JTBC가 공개한 시나리오를 보면 박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에 남북 접촉 여부를 묻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이 문장 밑에는 우리 군이 당시 북한의 최고 권력기구였던 국방위원회와 3차례 비밀접촉을 했다는 주석이 달려 있었다.
당시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남북관계가 완전히 단절된 상황이었다. JTBC는 “당선인으로서 파악한 정보를 바탕으로 전임자에게 남북관계의 실상을 인수·인계해 달라는 요청으로 보이는 질문”이라면서 “박 당선인이 이 시나리오대로 묻고 이 대통령이 답을 했다면 그 대화의 결과도 유출됐을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최씨가 박 대통령의 외교 업무에도 개입한 정황까지 포착됐다. 박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과의 회동 후인 오후 4시30분쯤 줄리아 길라드 당시 호주 총리의 당선 축하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JTBC가 입수한 최씨의 노트북에는 회담 14시간 전에 관련 참고자료를 미리 받아본 흔적이 있었다. 파일의 작성자 아이디도 ‘MOFAT’여서 당시 외교통상부가 생산한 문서로 추정된다.
특히 JTBC가 공개한 화면에는 이외에도 ‘중국 특사단 추천의원 명부’ ‘다보스 포럼 특사 파견’ ‘아베 신조 총리 특사단 접견 자료’ 등 외교 활동과 관련된 자료가 다수 포함돼 있다. 최씨가 단순한 권력형 비리 수준을 넘어 극도로 민감한 외교·안보정책에까지 개입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최씨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선에 개입한 정황도 나왔다. 최씨는 ‘홍보 SNS 본부 운영안’이라는 문건을 2012년 12월 29일 오후 5시에 받았다. 본부장을 비롯해 실무 인력과 업무 내용 등이 소개된 문건이었다. 그런데 6일 뒤인 2013년 1월 4일 문건에 적혀 있던 변추석 본부장이 대통령직인수위 홍보팀장으로 임명됐다. 이외에도 ‘대통령 당선인 대변인 선임 관련’ ‘역대 경호처장 현황’ ‘정부조직개편안 관련 평가’ 등의 문건이 발견돼 최씨가 인선과 정부조직 개편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최씨, 해외 특사 추천명부도 확보… 외교까지 개입 의혹
입력 2016-10-26 04: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