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혹 해소커녕 ‘최순실 게이트’ 불 번진다

입력 2016-10-26 00:02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대통령 연설문 사전 유출 의혹’ 관련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마친 뒤 퇴장하고 있다. 이병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최순실씨의 국정 개입을 사실상 인정하면서 박근혜정부는 2013년 2월 출범 이후 줄곧 강조해 왔던 정권의 신뢰성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연설문 수정 등 필요한 의견을 들었다는 선에서 마무리했지만 정부 및 청와대 인사 개입, 정부 정책에까지 최씨가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는 의혹은 여전하다. 오랜 지인의 단순한 조언 차원을 넘어 ‘비선 실세’의 광범위한 ‘국정 농단’으로까지 사태가 비화된 이유다. 박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여러 의혹에 대한 설명과 경위 등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아 의혹과 파장은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누구보다 ‘원칙’과 ‘신뢰’를 강조해 왔다. 대내외 정책 수립 및 집행 과정에서 고집스러울 만큼 이런 원칙을 고수해 왔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국정 운영에도 심대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게 됐다.

특히 보안 유지가 생명인 대통령 관련 자료들이 사전에 민간인에게 유출된 것은 이른바 ‘비선’에 의해 국정이 좌지우지됐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이석수 전 특별감찰관의 감찰 내용 누설 의혹에 대해 ‘심각한 국기문란 행위’라고 날 선 비판을 했던 청와대가 오히려 ‘국기문란의 장본인’이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대통령 연설문과 회의 발언자료 등은 국정을 운영하는 대통령의 구상이 집약된 공식 문서다. 청와대 내에서도 극도의 보안이 유지된다. 그런 만큼 최씨가 박 대통령의 연설문을 ‘사전 보고’받았다는 대목은 지금까지 제기됐던 자금 유용, 특혜 등 의혹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앞으로 1년4개월 임기를 남겨놓은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과연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을 갖게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 대통령은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지만 청와대 보좌체계가 갖춰진 이후 그만뒀다”고 했다. 임기 초반 청와대 참모들 인선이 지연되는 등 보좌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으면서 민간인 신분인 최씨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자문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 언급은 최씨에게 전달된 연설문, 발언 자료 등이 대통령 취임 1년1개월이 지난 2014년 3월까지 집중된 것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수용하긴 어렵다. 야권은 이 문제가 박 대통령의 ‘사과’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입장이고, 최씨 관련 의혹이 추가로 불거지고 있어 향후 이 사태의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청와대가 한 달 넘는 기간 일관되게 무성의하게 해왔던 대응 방식도 문제다. 그동안 청와대는 최씨 관련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일방적인 의혹” “근거 없는 정치공세” “언급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해 왔다. 특히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21일 국정감사에서 최씨의 연설문 수정 의혹에 대해 “정상적인 사람이면 그걸 믿을 수 있겠나.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박 대통령을 근거리에서 보좌하는 비서실장 등 참모들이 최소한의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정치공세로 치부한 것이다.

전날 연설문 등의 사전 유출 의혹 제기 직후 ‘패닉’ 상태였던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사과 발표 이후에도 침통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이원종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참모들은 전날에 이어 이날도 오전부터 회의를 통해 대책을 논의했다. 청와대는 부속실과 연설기록비서관실, 연설문 작성 과정에 관여했던 전직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경위를 파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제부터는 박 대통령이 어떤 수습책을 꺼내놓을지 주목된다. 박 대통령이 우병우 민정수석을 비롯해 대대적인 청와대 참모진 개편 등 인적쇄신을 하지 않고는 정상적인 국정 운영은 앞으로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그래픽= 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