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 예산’이라지만… 내년 또 추경 편성 불보듯

입력 2016-10-26 00:00

내년 예산 400조원 시대를 앞두고 ‘무늬만’ 확장 예산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는 최대한 확장적으로 짠 예산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실제 뜯어보면 올해 추가경정예산만도 못한 긴축예산이라는 지적이다.

400조 숫자의 허상

박 대통령은 지난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내년 예산안은 중장기 재정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확장적으로 편성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도 재정 건전성 유지와 경기 활성화 사이에서 균형을 이뤘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러나 숫자로 확인되는 내년 예산안은 400조원 돌파라는 상징적 의미를 제외하고는 긴축의 성격이 더 짙다. 추경을 포함, 올해 정부의 재정지출은 398조6000억원이다. 내년 정부 세출예산안은 이보다 2조원가량 많은 400조7000억원이다. 총지출 증가율은 0.6%에 불과하다. 추경을 뺀 본예산 기준으로 해도 내년 예산안의 총지출 증가율은 3.7%로 정부가 전망한 내년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경상 경제성장률(4.1%)보다 낮다. 수입과 지출을 비교해봐도 확장적 지출과는 거리가 있다. 정부가 예상한 내년 총수입 증가율은 6.0%로 총 지출증가율(3.7%)보다 2.3% 포인트 높다.

정부가 자유롭게 쓸 실탄도 부족하다. 지난해 예산(추경포함) 대비 재량지출은 오히려 6조원 넘게 줄었다. 의무지출은 정부의 의도와 상관없이 복지 등에 자동적으로 지출되는 예산이다. 정부는 재량지출을 통해 경기 활성화를 꾀하는데 내년에는 올해보다 오히려 경기 활성화에 제약이 생긴다는 의미다. 국회예산정책처는 25일 “경제성장률과 총수입증가율 등 여러 가지 사안을 고려했을 때 확장적 재정 운용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내년 또 추경 편성하나

정부는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내년에도 저성장 기조가 지속될 우려가 크다고 보고 있다. 내년 성장률 목표치 3.0%에 대해서도 기재부 내에서 오는 12월 발표하는 내년도 경제정책 방향에서 하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분기 0.7% 성장 중에서 재정효과가 0.2%를 차지하는 등 재정 의존성도 크다.

이런 상황에서 내년 대내외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 지출의 역할이 커질 수밖에 없다. 내년 한 해의 성장률 제고뿐 아니라 중장기 성장동력을 창출하기 위해서도 저출산·고령화 극복을 위한 정부 투자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재정의 역할이 강조되는 시점인 셈이다. 정부의 예산안이 이를 반영하지 않고 보수적으로 짜였다는 비판에 대해 예산 당국 관계자는 “재정 건전성을 지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년에도 ‘본예산 긴축 편성→재정 고갈에 따른 추경 편성→본예산 긴축 편성’의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예산정책처 관계자는 “예산을 상반기에 조기 집행하는 관행을 생각하면 내년에도 하반기 재정 여력이 부족해 추경을 편성할 가능성이 높아보인다”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