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최순실 파일’ 대통령 사과로 끝낼 일 아니다

입력 2016-10-25 18:44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비선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씨 문제와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은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이나 홍보 등의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개인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며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이 있으나 청와대의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두었다”고 밝혔다. 이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한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국민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대통령의 사과는 최씨가 대통령 연설문을 연설도 하기 전에 파일 형태로 입수해 수정했다는 의혹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연설문 유출 정황으로 인해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에 최씨가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으로 출발한 이번 사건이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자 국기문란 사건으로 성격이 바뀌어버린 것이다.

즉각 야당은 청와대 참모진과 내각 총사퇴를 촉구하고 박 대통령이 수사 대상이라고 압박했다. 여당도 ‘최순실 문건유출 사건’으로 규정한 뒤 대통령의 직접적인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자 대통령이 급하게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A4용지 한 장짜리용 해명은 지금까지 최씨를 둘러싸고 제기된 의혹을 해소하는데 턱없이 미흡하다. 당장 연설문 유출과 관련해서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은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후 그만뒀다고 말했지만 최씨 소유 PC에서는 2014년 연설문도 들어 있다. 그해 3월 27일자 파일에 들어 있는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문’은 30곳에 빨간 글씨로 고친 흔적이 있었는데 다음날 대통령이 실제 한 연설도 20곳이 달라져 있었다. 이게 사실이라면 집권 1년이 지난 뒤에도 최씨가 연설문을 미리 받아보고 고쳤다는 얘기가 된다.

박 대통령은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이라고 최씨를 간단하게 소개했지만 그가 대통령을 등에 업고 전횡을 일삼았다는 의혹은 차고 넘칠 정도로 터지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서는 ‘이게 정상적인 나라냐’는 자조와 한탄이 광범위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는 임계점을 넘어섰다.

이 상황을 더 방치해서는 국정 운영이 제대로 될 수 없다.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도 최씨 사건이 철저하게 규명되지 않는 한 추진 동력을 확보할 수 없다. 관리 책임을 물어 우병우 민정수석을 즉각 경질해 참모진부터 쇄신해야 한다. 특히 검찰 수사가 불신을 받고 있는 만큼 국회 국정조사와 특검 등 모든 가용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진상을 규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