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이래 저축 독려를 위해 기념해 온 ‘저축의 날’이 수십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저축이 더 이상 미덕이 되지 못하는 시대를 상징하는 풍경이다.
저축의 날이 처음 국내 신문지면에 등장한 건 50여년 전인 1964년 9월이다.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통령령으로 9월 21일을 저축의 날로 지정한 게 시작이다. 박 전 대통령은 1년 뒤 홍승희 재무장관 등 각료들을 청와대로 불러들여 이를 매달 25일로 다시 공포했다. 저축의 날은 이후에도 두 차례 바뀌었다가 1984년에 이르러서야 10월 마지막 주 화요일로 고정됐다.
이후 1960, 70년대 저축의 날에는 항상 전 국민적 행사가 열렸다. 정부는 매년 ‘저축유공자’ 수백명을 선발해 훈장을 수여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등이 직접 행사에 참석한 가운데 저축을 많이 한 인기 영화배우 등이 포상을 받았다. 일선 학교에서는 저축을 꾸준히 한 학생들에게 상을 줬다. 시중은행은 우대금리를 주는 특판 상품을 내놨다. 관치금융이 일반 국민들의 자산관리 영역까지 깊숙이 개입했던 셈이다. 이렇게 은행에 모인 예금은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 사업과 재벌 특혜대출에 사용됐다.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저축의 위상은 추락했다. 시중은행에서 예금 금리를 급격히 내리면서 저축의 이점이 줄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순저축률은 1988년 24.3%로 정점을 찍은 뒤 계속 하락해 지난해에는 7.7%를 기록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징수한 이자소득세는 2조5189억원으로, 2012년보다 28.3% 낮아졌다. 저축의 날도 시간이 지나면서 기념하는 행사가 드물어졌다. 올해 이날을 기념해 예금상품을 내놓은 곳은 KEB하나은행 한 곳뿐이다.
금융위원회는 25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저축의 날 대신 제1회 ‘금융의 날’ 기념식을 열었다.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개혁과 서민금융, 저축에 공이 있는 이들을 선정해 황교안 국무총리가 직접 시상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비즈카페] 빛바랜 ‘저축의 날’ 역사속으로
입력 2016-10-25 17:58 수정 2016-10-25 2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