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임기 내에 개헌을 추진한다는 ‘청와대발(發) 개헌론’이 하루도 지나지 않아 표류 위기에 빠졌다. ‘대통령 연설문 사전 유출 의혹’이라는 최대 복병을 만나면서 청와대의 개헌 추진 발표는 급격히 힘을 잃고 있다. 야당에 이어 여당에서도 청와대가 개헌 논의에서 한 발 물러설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져나왔다.
‘최순실 의혹’의 직격타를 맞은 여권에서는 청와대 중심의 개헌 추진에 대해 경계하는 목소리가 분출됐다.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개헌 논의를 중단하자는 주장도 나왔다. 대권 잠룡으로 꼽히는 남경필 경기지사는 25일 페이스북을 통해 최씨 관련 보도를 언급하며 “진실이 모두 밝혀질 때까지 정치권은 개헌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태경 의원도 원내대책회의에서 “최순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개헌 논의를 잠정 유보하겠다는 각오로 ‘선(先)최순실 문제 해결’에 당력을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사건과 개헌은 별개 문제”라며 “개헌의 불꽃은 이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표는 다만 “국회 주도로 개헌 논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20대 국회 개헌추진 모임’의 여당 연락책을 맡은 권성동 의원도 “개헌은 국회 중심으로 추진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주도할 경우 야당의 반대로 개헌특위는 무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진석 원내대표도 “개헌 논의는 국민과 국회가 주도하는 것이 맞는다는 게 제 입장”이라며 청와대 중심 개헌 논의를 경계했다.
당내 개헌추진특위를 구성해 개헌안 마련을 위한 실무 준비에 착수하려던 때에 예기치 못한 논란을 맞은 새누리당 지도부는 개헌 추진 동력을 잃을까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어쨌든 개헌은 국민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추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번 사건과 분리해 접근한다는 방침”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는 당 내부에서만 개헌에 대한 합의를 모으기로 했다”고 전했다.
야당은 청와대발 개헌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할 일은 단군 이래 최악의 국기문란 국정농단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먼저 사과하고 최씨를 소환해 조사받게 하는 것”이라며 “벌거벗은 임금님에게 헌법 개정을 맡길 국민이 어디 있겠느냐”고 강력 비판했다. 추 대표는 국민 중심, 국회 주도, 선거구 개혁 수반, 미래지향적 개헌을 4대 원칙으로 제시하면서 “민주당은 당내에 개헌연구자문회의를 구성하고 국민주권 개헌 대토론회를 열어 질서 있는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만약 청와대 주장대로 박 대통령이 헌법개정안을 발의하려면 새누리당을 탈당해야 한다”며 “대통령은 개헌에 개입하지 말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대통령이 헌법개정안을 발의한다고 하지만 최씨가 도망쳐버렸으니 누가 수정하겠나. 아마 개정안을 제안할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글=이종선 권지혜 기자 remember@kmib.co.kr, 사진=이동희 기자
연설문 유출에… 與서도 “靑, 개헌 논의서 빠져라”
입력 2016-10-26 0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