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 시선이 뭐가 중요합니까. 나만을 위해 살아도 모자란 인생인데.’
혼술(혼자 술 마시기) 대가 진정석(하석진) 선생의 말이다. 어투는 약간 거만한 듯 당당하게. 매사에 ‘쿼얼리티’를 따지면서 정작 본인은 ‘고쓰(고퀄리티 쓰레기)’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가 이상하게 밉지 않다. ‘올빽’ 머리에 고급 수트를 차려입고도 감출 수 없는 허당기가 그의 매력이다.
최근 불고 있는 혼술 열풍의 중심에 tvN ‘혼술남녀’가 있다. 노량진 학원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에서 스타강사 진정석은 퇴근 후 혼술로 고독을 즐긴다. 진정석 캐릭터는 배우 하석진(34·사진)을 만나 비로소 완성됐다. ‘공대 오빠’에서 ‘뇌섹남’으로 거듭난 그가 인생 캐릭터를 만난 것이다.
‘혼술남녀’ 종영을 하루 앞둔 24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하석진은 “사실 시놉시스를 처음 읽었을 때부터 자신이 있었다”며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재수 없는 인간이라면 내가 잘 이해하고 연기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고 털어놨다.
실제 본인 성격과 어느 정도 맞닿아있기 때문이라는 폭탄 고백을 덧붙였다. “저도 그런 원인불명의 자신감 같은 게 좀 있어요. ‘마냥 잘 되겠지’ 하는 거요. 낙천적인 편이에요.”
이 작품에 끌린 또 다른 이유는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코미디를 하고 싶었어요. 그동안 제가 했던 역할 대부분이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까불고 장난치고 싶어도 그러면 안 됐죠.”
진중하거나 혹은 재미없거나. 작품 속 이미지가 만들어낸 틀을 깨고 싶었던 것이다. MBC ‘나 혼자 산다’, tvN ‘뇌섹시대-문제적 남자’ 등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한 것도 이와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한양대 기계공학과 출신인 하석진은 군 전역 이후 친구의 권유로 얼떨결에 연기를 시작했다. 2005년 항공사 광고로 데뷔해 반듯한 공대생 이미지로 유명세를 탔다. 여러 작품에서 경력을 쌓긴 했으나 초반 5년 정도는 별 배움 없이 흘려보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 ‘지금까지 뭘 한 거지?’ 차가운 자기반성을 한 뒤 마음을 달리 먹었다.
“배우라는 직업은 안정이라는 게 없잖아요. 불러주는 사람이 있어야 일을 하는 건데 ‘과연 내가 부름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싶더라고요. ‘이러다 망하겠다’는 위기의식이 든 거죠. 그때부터 현장에 나가 연기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기회인지 깨닫게 됐어요.”
혹자는 하석진을 두고 ‘왜 이렇게 안 뜨냐’고 성화하기도 한다. 그의 대답은 확고하고 솔직했다. ‘왜 꼭 떠야만 하느냐’고 되묻고 싶다고 했다.
“대중은 톱스타가 되기만을 원하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더 이뤄야할 게 많죠. 그런데 꼭 인기 많은 한류스타가 돼야만 완성된 연예인인 건 아니잖아요. 제 길을 열심히 가고 있습니다.”
배우로서의 거창한 목표는 없다. 그저 ‘계속 성장하는 사람’이면 좋겠다. 하석진은 “과거에는 직업의식도, 잘하고 싶다는 의지도 없었지만 이제는 다르다”며 “조금씩 성숙해가는 느낌이다. 이 경사대로 쭉 오르막이어야 할 텐데 싶다”고 웃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꼭 떠야 하나요?”… 하석진, 솔직함마저 섹시한 [인터뷰]
입력 2016-10-2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