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작 ‘맨 인 더 다크’. 서스펜스와 스릴감이 상당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저 그랬다. 우루과이 출신의 신예 피드 알바레스가 연출한 영화의 내용은 단순하다. 3명의 불량 젊은이가 눈멀고 나이 든 이라크전 참전용사의 집에 돈을 훔치러 들어갔다가 오히려 시각장애인 노인네에게 당해 2명이 죽고 한 명만 간신히 살아남아 도망친다는 줄거리. 특별할 것도, 놀라운 반전(反轉)도 없고 아주 무섭지도 않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대박을 쳤다. 990만 달러의 제작비로 1억47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것. 그러나 과연 이 영화가 그토록 많은 관객을 끌어들일 만한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불가다. 하긴 요 몇 년 새 나온 ‘1000만 관객’ 국산영화들도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보았는지 납득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으니 내 영화 감식안이 무딘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충분한 대박 이유가 있는 저예산 영화들이 떠올랐다. 대표적인 게 ‘이지 라이더(데니스 호퍼, 1969)’다. 마약과 히피로 요약되는 ‘반문화(反文化)’의 대표작.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결국 극장에서 상영되지 못했지만 이 클래식 걸작은 36만 달러의 제작비로 60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 또 오늘날 고전이라 불릴 수 있는 것들 가운데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과 ‘록키(1976)’ 그리고 ‘매드 맥스(1979)’도 생각났다. 아울러 ‘용쟁호투(1973)’와 ‘목구멍 깊숙이(Deep Throat, 1972)’도.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은 오늘날 붐을 이루고 있는 좀비영화의 효시다. 실베스터 스탤론을 일약 스타로 만든 ‘록키’는 99만5000달러로 2억2500만 달러를, 또 호주영화 ‘매드 맥스’는 30만 달러로 9900만 달러를 길어 올렸다. 그리고 본격적인 포르노 시대의 개막을 알린 ‘목구멍 깊숙이’는 겨우 2만 달러로 최소 1억 달러, 최대 6억 달러라는 엄청난 수입을 기록했다. 이런 저예산 대박 영화들을 보노라면 꼭 돈이 돈을 버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영화이야기] <93> 저예산 대박영화
입력 2016-10-25 1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