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소니·명예훼손 위자료 ‘최고 3억’

입력 2016-10-25 04:05
“가해자가 교통사고 후 도주, 음주·난폭운전 등으로 피해자가 사망하거나 중대한 상해에 이른 경우 교통법규 준수를 신뢰한 피해자와 유족의 정신적 고통은 매우 크다. 가해자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크며 사고 발생에 대한 예방의 필요성도 크다. 이런 사유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위자료 산정 기준 권고안을 마련했다.”

앞으로 뺑소니 교통사고에 따른 사망·상해 피해자와 유족은 그간 통용되던 ‘1억원 안팎’보다 훨씬 더 많은 최대 3억원의 위자료를 받게 될 전망이다. 24일 대법원이 새로 마련한 위자료 산정 방안의 특징은 사망사고 위자료의 기준액(기존 1억원)을 배까지 늘리는 ‘특별가중인자’를 명시했다는 점이다. 교통사고뿐 아니라 대형 재난사고, 영리적 불법행위, 명예훼손 등 불법행위를 유형별로 나눠 위자료의 기준금액만 최대 3억원까지 높였다. 여기에 사건의 비난 가능성, 예방 필요성이 클 때마다 위자료를 늘려 잡기로 했다.

그간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위자료가 현실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고려한 결과다. 우리 법원은 “위자료 액수는 재산적 손해 액수처럼 증거로 입증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라며 “법원은 그 직권에 의해 이를 산정할 것이고 하등의 증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대법원 판례를 따랐다. 육체·정신적 고통은 형태가 없고 수학적으로 명쾌히 산출되지 않아서 단지 법원이 여러 사정을 참작하겠다는 취지였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이 현실화 요구에 따라 사망사고 위자료의 기준액을 1억원으로 7년 만에 상향했지만 국민정서법상으로는 여전히 부족했다. 다른 나라의 경우 인신손해(人身損害) 시 노동능력상실률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취미, 성생활 심지어 외모에 주는 영향까지 고려한다는 지적도 계속됐다. 우리나라의 위자료는 비슷한 경제 규모를 갖춘 다른 나라들보다 낮다는 비판도 꾸준했다. 법학계에서는 “국민총소득 대비 사지마비 위자료 수준을 계산하면 미국은 한국의 37배”라는 연구 결과가 자주 인용됐다.

대법원은 이번에 각종 위자료 기준 금액을 상향하는 산정 방안을 제시하며 ‘적정한 것’이라는 표현을 썼다. 대법원은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존엄과 가치, 생명권을 실효성 있게 보장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위자료 산정 방안의 조속한 마련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지난달 대한변호사협회도 대법원의 의견수렴 과정에서 “향후 위자료 인정액이 대폭 상향될 필요가 있다”는 찬성 의견을 제시했다.

교통사고 외에도 세월호 참사 등 다수의 인명피해를 낳는 대형 화재·붕괴·폭발 사고가 잦아지는 사회적 현실이 새 방안에 반영됐다. 특히 시신 수습이 어려운 때가 많아 정신적 고통이 가중된다는 것이 대형 재난사고 위자료 현실화의 배경이다. 검찰 수사로 다시 주목받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둘러싸고 징벌적 손해배상을 시사하는 대목도 있다. 대법원은 ‘사회 일반에 생활필수품 등 재화와 용역의 인체에 대한 안전성과 무해성 등에 관한 불신과 공포·불안을 야기한 경우’ 적정한 위자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대법원은 명예훼손에 대해서도 “중대한 상해에 못지않게 매우 큰 정신적 고통을 겪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허위 사실인 경우, 악의적·영리적 목적이 있는 경우 중대 피해로 보고 기준 금액부터 1억원으로 하기로 했다. 명예훼손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1000만원 미만의 위자료만 인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