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법상 타인의 신체, 자유 또는 명예를 해하거나 정신상 고통을 가한 자에게 물려오던 ‘위자료(慰藉料)’가 상향 현실화된다. 기업이 불법 영리활동으로 생명의 존엄성을 도외시하면 최대 9억원, 뺑소니로 사람을 치어 사망케 한 경우 최대 3억원을 산정하는 식이다. 그간 우리나라의 위자료는 경제 규모가 비슷한 다른 나라보다 형편없이 적다는 비판이 컸었다.
대법원은 교통사고, 대형 재난사고, 영리적 불법행위, 명예훼손 등 4가지 불법행위 유형을 제시하고 유형마다 3단계의 위자료 산정 방안을 결정, 24일 전국 법원 내부전산망에 게시했다고 밝혔다. 앞으로는 4가지 불법행위 유형마다 서로 다른 기준 금액이 부여된다. 여기에 특별 가중 사유가 있으면 기준 금액을 배로 늘리고, 이 기준 금액의 50% 범위 내에서 다시 증액·감액 사유를 고려하는 방식이다.
불법행위별 기준액은 영리적 불법행위 3억원, 대형 재난사고 2억원, 교통사고 1억원, 명예훼손 5000만∼1억원으로 결정됐다. 특별 가중인자 적용 필요성이 인정되면 영리적 불법행위 6억원, 명예훼손 1억∼2억원, 대형 재난사고 4억원, 교통사고 2억원 등 위자료가 배로 커진다. 일반 가중사유가 한 번 더 적용되면 위자료는 50% 더 늘어난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처럼 기업이 영리 추구 과정에서 인체 안전성에 대한 불신을 야기하면 피해자에게 최대 9억원의 위자료가 지급되는 셈이다.
법관들이 위자료를 높여야 할 특별 가중인자로 꼽은 것은 고의·중과실에 의한 불법행위, 수단·방법이 사회 통념상 허용될 수 없을 정도로 위법한 경우, 이익 규모가 현저히 큰 경우 등이었다. 생명·신체에 직접적 위해 가능성이 있는 경우, 소비자·일반인이 상당한 신뢰를 했던 경우 등도 특별 가중인자로 제시됐다. 교통사고 사망 사건의 음주운전·뺑소니, 재난 사고에서의 부실시공 및 관리감독 부실 등이 이에 해당한다. 명예훼손 사건에서는 허위사실인 경우, 악의적이거나 영리 목적이 있는 경우 등으로 특별 가중인자가 설정됐다.
새로운 위자료 산정 방안은 지난 7월 전국 민사법관 포럼 이후 지난 8월 연구반 구성, 지난달 대한변호사협회와의 의견수렴 등 과정을 거쳐 최종 마련됐다. 기존의 위자료 인정 액수는 우리 법 공동체의 건전한 상식, 국가 경제 규모, 해외 판례 등에 비춰 낮은 수준이었다는 게 법관들의 공감대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서도 적용 가능할 것”이라면서도 “다만 교통사고의 경우 사회적 파급효과를 고려, 점진적으로 반영될 여지가 있다”고 안내했다.
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제2 가습기 사태 발생한다면… 위자료 최대 9억까지 지급한다
입력 2016-10-25 0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