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학교 예술교육 활성화사업’ 예산없어 좌초 위기

입력 2016-10-24 04:03

학교폭력과 학생 자살을 해결하는 유력한 대안이라고 강조됐던 ‘학교 예술교육’이 예산 부족으로 좌초 위기에 몰렸다. 학생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학교들은 고장 난 악기를 수리하거나 교체할 돈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뮤지컬이나 연극 교육을 하는 곳에선 강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서울 은평구의 고등학교에서 학생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 한 교사는 23일 “예산 부족으로 플루트 6개 중 절반이 고장 난 상태이고, 첼로 2대는 2년째 활을 교체하지 못하고 있다”며 “학생들은 낡고 망가진 악기로 합주 연습을 한다”고 말했다. 2012년 하반기 정부는 이 학교에 오케스트라 사업을 하라며 4000만원을 지원했다. 학교는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클라리넷 등 12종의 악기 32개를 마련했다. 학생들에게 악기 다루는 법을 가르쳐줄 강사도 고용했다.

그러나 지원금은 2014년 2000만원으로 반토막나더니 지난해와 올해 500만원으로 급감했다. 강의료를 부담하기에도 빠듯한 돈이라 악기 교체나 수리는 무한정 뒤로 미뤄졌다.

충북의 한 초등학교 오케스트라도 비슷한 처지다. 이 학교는 2012년 하반기부터 정부 지원을 받았다. 학생 참여도 꾸준히 늘어 매년 새 악기를 구입하며 오케스트라 규모를 키워왔다. 지난해 12월 교직원과 학부모 500여명 앞에서 90분짜리 오케스트라 공연을 열어 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13년부터 매년 예산이 줄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오영훈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교육부로부터 받은 ‘2013∼2016년 학교 예술교육 사업별 예산 지원 현황’을 보면 정부는 2013년 학생 오케스트라 사업에 특별교부금 161억5640만원을 책정했다. 여기에 시·도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 지원금을 더해 총 195억712만6000원을 412개 학교에 나눠줬다.

이 예산은 올해 71억5177만6000원으로 3분의 1로 줄었다. 학생 뮤지컬 지원 예산은 2013년 38억2900만원에서 올해 10억4750만원으로 급감했다. 학교 연극회 사업은 처음 시작한 2014년 14억7200만원에서 올해 12억780만원으로 감소했다. 학교 연극 동아리 사업은 같은 기간 15억6200만원에서 4억9844만원으로 3분의 1토막났다.

학생 오케스트라의 경우 특별교부금이 올해 29억3500만원으로 급감한 것이 결정타다. 오케스트라 특성상 악기 구입 등으로 초기비용이 많이 들어가므로 사업 초반에 지원이 집중되는 게 자연스럽긴 하다.

그래도 시·도교육청이나 지자체 지원만 믿고 지원금을 지나치게 깎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자체는 2013년 3억1230만원에서 2016년 6억2515만6000원, 시·도교육청은 30억3842만6000원에서 35억9162만원으로 오케스트라 지원금을 소폭 늘리는 데 그쳤다.

정부 예산은 줄었지만 예술교육 수요는 증가하고 있다. 학생 오케스트라 참여 학교는 2013년 412개교에서 올해 505개교, 학생 뮤지컬은 같은 기간 125개교에서 178개교로 빠르게 늘었다.

홍석호 이도경 기자 wi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