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부검 영장’ 내일 시한… 경찰, 작전상 후퇴?

입력 2016-10-24 00:05
홍완선 종로경찰서장(가운데 경찰제복)이 23일 오전 백남기 농민의 시신 부검영장을 집행하기 위해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지만, 백남기 투쟁본부 관계자들에게 가로막혀 있다. 이병주 기자
경찰이 23일 백남기씨 부검 영장의 강제집행을 시도했다. 백씨가 사망한 지 29일, 서울중앙지법이 ‘조건부 부검 영장’을 발부한 지 26일 만이다.

백남기 투쟁본부와 유족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입구에서 장례식장 건물로 들어가는 길목에 몸으로 스크럼을 짜고 진을 쳤다. 경찰은 3시간16분 만에 철수했다. 경찰의 전격적인 영장 집행 시도와 철수를 두고 ‘명분 쌓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검 영장 강제집행을 놓고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논란은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23일 오전 9시36분 ‘오전 10시에 부검영장을 강제 집행한다고 투쟁본부 측에 통보했다. 상황에 따라 충돌도 감수하겠다’는 공지 문자를 기자들에게 보냈다. 이어 오전 10시 홍완선 종로경찰서장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찾았다. 경비병력 800여명은 강제집행을 위해 서울대병원 주위에 배치됐다. 홍 서장은 “영장을 강제 집행하러 왔다. 경찰은 그동안 협의하려는 노력을 해왔지만 유족을 만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투쟁본부 측 100여명은 서로 팔짱을 끼고 몸에 쇠사슬을 이어 묶은 채 장례식장 1층으로 들어가는 길목을 막아섰다. 장례식장 건물 내부에는 집기 등을 쌓아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반발이 거세자 경찰은 진입을 중단했고, 현장에 있던 야당 의원들이 양측 간 협의를 위해 중재에 나섰다. 경찰 측은 “유족을 직접 만나 부검 협의를 하겠다”고 제안했고, 투쟁본부는 “유족은 협의할 의사가 없다”며 맞섰다. 협의 장소를 놓고도 갈등이 빚어졌다. 경찰은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겠다고 했지만 투쟁본부 측은 반대했다.

팽팽한 긴장 상태가 계속되면서 경찰은 입장을 바꿨다. 내부 논의를 거쳐 “유족이 직접 만나 부검 반대 의사를 밝히면 오늘은 영장을 집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법률대리인을 통해 유족 측에 전달했다. 유족은 부검에 반대하며, 경찰과 접촉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재차 강조했다.

홍 서장은 “유족 측이 언론을 통해 협의에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명시적으로 전달했다”며 “유족 의사를 존중해 오늘은 영장집행을 하지 않고 철수하겠다”고 밝혔다. 남은 이틀 동안 경찰이 강제집행에 나설 수 있는지에 대해선 “검토해보겠다”며 원론적으로 답했다.

투쟁본부는 경찰이 강제집행의 명분을 쌓기 위해 진입을 시도했다고 본다. 박석운 투쟁본부 공동대표는 “사망원인이 경찰 물대포로 분명해져 부검 영장이 명분을 잃자 유족과 협의하는 모양새를 보여 부검 영장 강제집행을 위한 명분을 쌓고 있다”고 비판했다. 손영준 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은 “유족과 투쟁본부는 그동안 수차례 부검영장 거부 의사를 밝혀왔다”며 “모든 수단 방법을 동원해 부검영장 집행을 막을 것”이라며 말했다.

정치권은 경찰의 부검 영장 강제집행 시도와 무산을 두고 서로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법원이 유가족 협의를 전제로 영장을 발부했다”며 “유가족 뜻을 거스른 영장집행은 불법이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반면 새누리당 염동열 수석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정확한 사인규명을 위해 부검은 불가피한 가장 기본적 절차”라고 했다.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성명을 발표해 “영장 집행 하나 못하는 경찰청장은 물러나야 한다”고 압박했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사진=이병주 기자, 그래픽=박동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