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2013년 김만복 전 국가정보원장이 공저자로 참여한 회고록 ‘한반도 평화의 길’도 출간 이후 격렬한 논란을 불렀다. 회고록 논란은 왜 거듭되는가? 논란을 피해갈 방법은 없을까?
A : 송 전 장관, 이 전 대통령, 김 전 원장. 세 전직 정치인의 회고록은 비교적 가까운 과거에 있었던 일을 다뤘고, 북한·외교 관련 비밀 수준의 정보를 공개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저자나 관련자가 형사 고발됐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역사와 국민에게 남기는 회고록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회고록이라는 의심을 받는다는 점도 비슷하다.
기록전문가로 최근 ‘대통령 기록전쟁’이란 책을 출간한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은 세 회고록이 비밀을 공개했다는 점을 비판한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은 아예 따옴표로 외국 정상의 발언을 공개했다. 송 전 장관도 ‘북한 쪽지’ 얘기를 썼는데 그건 명백히 비밀에 해당한다”면서 “일정 시간이 지나서 비밀이 해제되기 전까지는 회고록이라고 해도 비밀을 공개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회고록에서 비밀 공개는 종종 정치쟁점으로 비화된다. 이번 송 전 장관 회고록도 2007년 청와대 비공식회의에서 오간 문재인 당시 비서실장의 발언이 공개돼 논란이 됐다. 이 전 대통령과 김 전 원장 회고록이 고발까지 된 이유 역시 기밀 누설 혐의 때문이다.
북한, 외교, 국방 등 국가의 중요 정보를 다룬 주요 정치인의 회고록은 출간 전 국정원이나 외교부, 청와대 등의 자문을 받는 경우가 많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대중 자서전’을 내기 전 국정원과 접촉해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술이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지 문의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도 남북기본합의서 발표, 남북 유엔 동시가입 등 일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노태우 회고록’에서 남북간 오간 얘기는 상당히 제한적으로 기술했다.
장의덕 개마고원 출판사 대표는 참여정부 기록비서관 출신의 비망록을 출간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청와대의 내밀한 얘기들을 썼는데, 청와대 각 부서에서 내용을 일일이 체크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인쇄까지 마쳤다. 그런데 뒤늦게 NSC(국가안전보장회의)가 반대해서 책을 전량 폐기한 적이 있다.”
장 대표는 “문제가 된 부분이 그리 중요한 내용도 아니었다. 외국 정상이 한 사소한 얘기를 두고 외교 관례상 공개되면 안 되는 것이라며 수정할 것을 요구했다”면서 “결국 그 부분을 수정해 다시 책을 찍었다”고 말했다.
회고록 저자들은 본인의 기억에 오류가 없는지 검증하기 위해서, 또는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 민감한 내용에 대해서는 당시 회의 참석자들이나 당사자에게 교차확인을 받기도 한다. 송 전 장관의 경우, 당시 회의 참석자들이나 당사자가 살아있는데도 이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교차확인을 했더라면 회의 동석자들이 그의 기술을 부정하는 사태가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송 전 장관이 왜 함께 청와대에서 일했던 이들에게 회고록 내용을 검증하지 않았는지, 특히 당사자인 문재인 전 비서실장에게 왜 사전에 확인하지 않았는지는 의문이다. 김 전 원장도 국정원 확인 절차 없이 회고록을 냈다가 국정원으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회고록을 내는 출판사가 팩트 체크를 좀더 철저히 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회고록을 다수 출간한 한 출판사 대표는 “전직 장관에게 사실 확인을 요구할 수 있는 출판사는 많지 않다. 그러나 논란이 될 만한 내용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팩트 체크를 해야 한다”면서 “송 전 장관 회고록의 경우, 출판사가 저자에게 북한 메모를 보여달라고 할 수는 없더라도 이게 진짜냐,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좀더 신중하게 기술해야 하지 않겠느냐 등을 물어보고 설명을 충분히 들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출판사 대표는 “회고록이나 비망록의 팩트와 관련한 검증은 사실 출판사가 하기엔 어려운 영역”이라며 “청와대 안가에서 이뤄진 회의 내용을 출판사가 어떻게 검증하겠나. 저자의 양식을 믿고 출판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글=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
[우리 그 얘기 좀 해요-문화계 팩트체크] 회고록, 왜 자꾸 논란 빚나?
입력 2016-10-24 1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