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가 ‘헬조선(지옥과 같은 나라 지칭)’으로 명명되는 시대에, 한국교회는 ‘X독교(기독교 비하 용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습니다. 이 용어가 대중화되었다는 사실은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교회 안팎의 시각이 그만큼 부정적이란 얘기죠.”(배덕만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교수)
지난 21일 오후 경기도 광주 곤지암의 소망수양관 대예배실. 국내 양대 신학자 연구 단체인 한국기독교학회(회장 노영상 전 호남신학대 총장) 제45차 정기학술대회 주제 강연장 분위기는 예년과 사뭇 달랐다. 어려운 학술 용어 대신 헬조선, 흙수저, X독교… 같은,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용어들이 거침없이 오르내렸다.
‘종교개혁과 후마니타스: 기독교는 <헬조선>에 희망을 줄 수 있는가’. 기독교학회의 올해 학술대회 주제는 파격적이다. 43년 전통을 지니고 있는 국내 대표적인 신학연구 모임에서 사회 현상을 직설적으로 반영한 용어가 전면에 등장한 건 사실상 처음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기독 지성으로 꼽히는 신학자들마저 우리 사회와 교계 현실이 그만큼 암울하다는 진단을 내린 것일까. 학회 회장인 노영상 전 호남신학대 총장은 “‘헬조선’이라는 주제 용어 선정을 두고 지나친 현실 평가라는 내부 의견들도 많았다”면서 “하지만 이런 용어에 스며 있는 비판 정신을 겸허한 마음으로 살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의 희망은 예수 그리스도에 있음을 찾아내는 일이 신학자들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도대체 한국교회는 세상으로부터 왜 이렇게 욕을 먹어야 할까.
“교회 안에 만연한 종교적 혼합주의와 (교회의) 끊임없는 세상·현실과의 타협, 아울러 신학이 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 아닐까요.” 주제 강연자로 나선 배덕만(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교수의 진단이다.
그는 이어 “한국교회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타락한 곳’ ‘구원의 대상’으로 규정한 채 오직 전도와 선교의 관점으로만 접근하면서 세상과 대화하는 법을 잊어버렸다”고 지적하면서 “교회는 오늘의 현실과 상황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소통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고 과제를 제시했다.
그는 또 “교회 개혁의 1차적 책임은 신학자들, 신학 교수들에게 달려 있다”면서 “신학자들이 얼마나 당대의 권력과 대세에 저항하며, 진리의 수호자로서 사명을 다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학자들에 대한 역할론은 개회예배에서부터 강조됐다. 김지철(소망교회) 목사는 ‘왜 신학이 재미없어 졌는가’를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하면서 ‘3무(無) 신학’을 지적했다.
“지금 (한국 교회의) 신학에는 현장이 없고, 고뇌가 없고, 논쟁이 사라지면서 매력 없는 학문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그는 “예수님은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 대제사장들과 안식일 논쟁, 정결법 논쟁 등을 통해 결국 하나님 사랑의 뒤집기, 즉 ‘전복(顚覆·뒤집어엎음)의 신학’을 몸소 보여주셨다”면서 “우리 신학자들은 삶의 현장을 놓쳐서도, 치열한 신학적 논쟁을 피해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김 목사는 바둑을 둘 때 반드시 ‘복기(復棋)’를 하는 것처럼 교회 갱신을 위한 복기(자기 반성)를 위해서도 신학자들은 삶의 현장을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이틀 동안 진행된 학술대회에는 국내 40여 신학대와 기독교대학의 신학부·신학과·기독교학과 소속 교수와 대학원생 등 400여명이 참석했다. 한국신·구약학회와 한국실천신학회 등 13개 회원학회는 30여개에 달하는 자유주제 논문을 발표했다. 또 김문현(그리스도신학대) 김재진(케리그마신학연구원) 박일준(감리교신학대) 유선희(장로회신학대) 박사는 ‘제11회 소망학술상’을 수상했다.
광주=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헬조선’, 그래도 희망은 교회다
입력 2016-10-23 21: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