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파문이 문화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웹툰작가 이자혜씨의 ‘미성년자 성폭행 모의·방조 논란’으로 촉발된 성추문은 소설가 박범신씨, 시인 박진성씨 등 문단으로 번져나가 충격을 던졌다. 이번에는 미술계가 논란에 휩싸였다.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함영준 일민미술관 책임 큐레이터는 23일 공식 사과문 발표와 함께 활동 중단을 선언했다. 앞서 트위터리안 A씨는 22일 자신의 트위터에 “함 큐레이터는 대학에 다닐 때부터 그런 쪽(성추행)으로 더러웠고 유명했다”고 폭로했다.
A씨는 “대학교 술자리였다. 나는 만취했고 눈을 떠보니 누군가의 집이었고 불이 꺼진 상태에서 누군가의 손이 XX 속으로 들어와 있었다”며 “함씨가 신문기고를 통해 자신은 페미니스트라고 했을 때 정말 기가 찼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웹툰작가 이씨는 웹툰을 통해, 함씨는 지면을 통해 평소 페미니즘을 옹호해왔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위선적인 행동은 실망감과 함께 충격을 주고 있다.
SNS를 통해 논란이 일파만파 확대되자 함씨는 온라인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는 “명백한 피해자인 OOO께 가장 먼저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며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죄송함을 간직하고, 어떤 변명도 없이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다”고 했다.
이어 “큐레이터로서 지위와 권력을 인식하지 못하고 특히 여성 작가를 만나는 일에 있어 부주의했음을 인정한다”며 “모든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제가 가진 모든 직위를 정리하겠다. 현재 저와 진행 중인 모든 프로젝트를 최대한 빨리 정리한 후 그만 두겠다”고 밝혔다.
소설가 박범신씨나 시인 박진성씨, 큐레이터 함영준씨 등 일련의 성추행 논란은 문화계의 갑을관계에 따른 폐쇄적인 환경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문화계를 좌지우지하는 인사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계속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웬만한 것쯤은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자유분방한 예술가들이 성추행을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한 미술평론가는 “함씨 논란의 경우 기획전에 참여하려는 작가로서는 한 번 기회를 놓치면 몇 년을 다시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당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며 “가해자는 문제의식이 결여되고, 피해자는 설령 누군가에게 얘기를 하더라도 문제해결은 안 되고 자신만 망가지기 때문에 쉬쉬하곤 한다”고 말했다.
성추행 문제는 문단이나 미술계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연극계도 연출가와 신인배우 사이에 끊임없이 성추행 논란이 일었으나 실명이 거론된 적이 없을 뿐이다. 영화계도 마찬가지다. 감독과 여배우, 스태프 간의 성추행 소문이 심심찮게 나돌고 있다. 사진계도 유명 작가의 성추행 소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언젠가는 터져 나올 시한폭탄이라는 얘기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의 저자 이민경씨는 “서브컬처계에서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시작돼 문학계, 미술계, 영화계, 사진계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면서 “처음에는 익명으로 고발이 나오다가 다른 피해자들의 고발이 겹치면서 실명이 확정되는 식으로 사태가 전개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우리 사회 거의 모든 분야에 워낙 만연했던 성폭행 문제에 대해 피해자인 여성들이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라면서 “최근의 여성혐오 사건들과 페미니즘 바람으로 자신의 경험을 분석할 언어를 찾은 여성들이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거나 이상하다고 느꼈어도 표현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트위터 등을 통해 드러내고 공유하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사진=이병주 기자
이자혜·박범신·박진성·함영준 다음은?… 지뢰처럼 터지는 문화계 성추문
입력 2016-10-23 18:32 수정 2016-10-23 2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