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현직 고위 외교관과 북핵 협상을 담당했던 전직 미국 관리의 비밀 회동이 지난 22일 막을 내렸다. 양측은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을 둘러싸고 팽팽히 맞선 것으로 보이지만 일부 진전도 있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우리 외교 당국은 “미국 정부와 무관한 민간 대화”라고 선을 그었다.
23일 외교부 등에 따르면 한성렬 북한 외무성 부상과 장일훈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지난 21∼22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한 호텔에서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북핵특사,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국 측 6자회담 차석대표와 비밀리에 회동했다.
회동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한반도 최대 현안인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를 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 측은 핵·미사일 폐기보다 북·미 평화협정을 우선 체결해야 한다는 ‘미국의 선(先)행동’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회동에 배석한 리언 시걸 미국사회과학원(SSRC) 동북아안보협력 프로젝트 국장은 취재진과 만나 “민간 입장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했다. 미국의 새 행정부와 공식적인 협의가 시작되길 바란다”고 밝혔다고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신문은 북한이 차기 미 행정부에 핵 군축 협상과 주한 미군 철수, 평화협정 체결 등을 요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이번 회동을 계기로 미국의 대북정책이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미국 측 인사들이 길게는 20여년간 현업을 떠나 있었던 데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또한 임기가 거의 남지 않았다. 때문에 미국 측 인사들이 차기 행정부를 위한 보고서를 작성하려 이번 회동을 주선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우리 정부는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미국 조야에서 고조되고 있는 ‘대북 협상론’을 염두에 둔 눈치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 정부는 이번 협의가 민간 차원의 ‘트랙 2’ 대화로 미 정부와는 전혀 관계없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면서 “미국 측 참석자들은 미 정부의 현 대북정책과 무관하다”고 밝혔다.
북한 측이 현직 고위 외교관을 내보냈음에도 ‘반관반민(半官半民)’ 성격인 트랙 1.5가 아닌 순수 민간 차원의 트랙 2로 규정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이 이러한 트랙 2 회의마저도 현직 당국자를 파견한 건 국제사회의 전례 없는 대북 제재와 압박으로 인한 외교적 고립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北, 고위 외교관 보내 美 차기정부 탐색?
입력 2016-10-24 0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