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 방치돼 온 공장 예술 공간으로 변신 중

입력 2016-10-23 18:47
전북 전주시 팔복동 제1산단 내 옛 쏘렉스 공장 전경. 25년간 방치돼온 이 공장이 내년 11월 ‘팔복예술공장’이란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을 앞두고 있다(왼쪽 사진). 강현덕 작 ‘9125번째 빛’. 9125일 동안 방치된 공간에 버려져 있던 유리 조각을 수집해 이곳이 조명 받는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축 팔복예술공장 시범 운영 오픈-문화로 행복해지는 팔복동을 환영합니다.”

‘팔복예술공장’이라 써 붙인 안내판이 덩그러니 붙었을 뿐 퇴락한 공장 건물 그대로다. 그래서 공장 입구에 아파트 부녀회, 경로당 명의로 내걸린 노란색 플래카드가 더 눈에 띄었다. 폐공장의 변신에 거는 주민들의 기대감이 그렇게 컸던 것이다.

지난 21일 전북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의 옛 ㈜쏘렉스 공장을 찾았다.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하던 이 공장은 1990년 폐업 이래 25년 넘게 방치돼 왔다. 1969년 조성된 제1산단과 제2산단이 위치한 팔복동은 BYC, 코카콜라, 해태제과 등이 들어서 지난 50여 년 간 전주를 먹여 살렸던 곳이다. 하지만 노후화와 기반시설 부족으로 점점 공장의 휴폐업이 늘고 있다. 팔복동의 폐공장 중 하나인 ㈜쏘렉스 공장이 ‘팔복예술공장’이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전주시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벌이는 낙후지역 재생사업으로, 내년 10월 개관을 목표로 150억원을 투입했다.

황순우 건축가(바인건축사 대표)가 총괄기획을 맡아 지난해 말부터 추진해온 이 프로젝트가 착착 진행이 되며 이날 오후 4시 팔복예술공장 시범운영(파일럿) 프로그램 오픈 행사가 열렸다. 전주시장을 비롯해 인근 기업인과 주민, 문화계 관계자 등 300여명이 모였다. 올 봄 까지만 해도 잡풀이 무성했던 공장 마당에는 예쁜 코스모스 밭이 단장돼 있다.

건물 2개 동 중 기역(ㄱ)자 형 1개 동을 이용해 전시와 공연이 이뤄졌다. 강현덕, 이자연 등 11명(팀)의 예술가가 참여해 설치, 영상, 회화 등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강현덕은 수십 년 버려진 공간에서 유리 조각을 수집해 조명을 비추며 이곳이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하기를 희망했다. 이자연씨는 카세트테이프를 이용한 설치를, 박방영씨는 카세트테이트를 생산하던 여공들의 일상을 담은 벽화를 그들이 오르내렸던 계단 벽에 제작했다. 아직도 가시지 않은 매캐한 먼지 냄새, 지워지지 않은 ‘간첩신고는 113’ 같은 글씨가 작품과 어우러지며 쏘렉스 공장이라는 장소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켰다. 오후 6시부터는 전주 지역을 대표하는 3개 공연팀이 파일럿 공연이 펼쳐졌다.

황 건축가는 “최대한 기존 건물에 손대지 않고 예술가와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탄생할 것”이라며 “파일럿 프로그램은 어떻게 쓸지, 어떻게 운영하는 게 좋을지에 관해 최적의 답을 찾기 위해 적은 예산으로 공간을 탐색하는 과정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쓰레기를 치우는 등 내부 청소만 한 채 전시와 공연을 준비했다”고 강조했다.

팔복동 동장 장수남(58)씨는 “문화시설이라고는 동사무소 2층 도서관이 전부인 동네”라며 “너무 반가워 행사 음식 준비를 주민들이 자처했다”고 말했다. 주민자치위원장을 맡은 태일기계 전갑용(65) 대표는 “회의에 처음부터 주민들을 참여시키고, 예술작품의 사업화도 한다니 신이 난다”고 했다. 그는 입주한 기업인들이 폐자재를 예술작품의 재료로 제공하는 소재은행을 운영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이곳 주민들은 지난 50년간 전주를 먹여 살렸지만 역설적으로 소음과 공해에 시달리며 늙어왔다”며 “공장 뿐 아니라 주민 삶도 재생시키는 공간이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1월 20일까지(063-283-9221).

전주=글·사진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