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이 직접 청와대의 전방위 사업 지원 사실을 밝히면서 최순실씨 개입 의혹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또 미르재단 설립 단계에서부터 ‘준조세’ 얘기가 오가는 등 대기업이 출연한 기부금이 강제적 성격임을 재단 내부에서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의원이 21일 국회 운영위원회의 청와대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미르재단 이 전 사무총장의 면담 녹취록 원본에는 출범 이후 벌어진 난맥상이 드러나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여러 사업과정에서 안종범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수차례 만나 사업을 ‘협력·기획’했다고 표현했다. 미르재단은 이른바 ‘K시리즈’ 사업을 비롯한 국가적 사업에 잇따라 참여했다.
그는 차은택 전 창조경제추진단장과 전경련 이승철 부회장의 추천으로 미르재단에 들어갔다. 이 전 사무총장은 “차 전 단장이 ‘국가를 위해 재능기부를 해 달라’고 부탁했다”며 “모든 게 어설펐다. 그때도 준조세라는 말로 미르가 언급됐었다”고 말했다. 대기업의 자발적 출연이라는 정부 설명과는 정반대다. 이어 “약정을 이행해 달라고 몇 번씩 기업에 공문을 보냈다”며 “약정 기업 중에는 계열사에 (기부금을) 배분해 출연약정을 안 하고도 출연금을 낸 기업도 있었다”고 말해 대기업의 조직적인 움직임도 시사했다.
정부가 왜 미르재단을 특정해 사업을 몰아줬는지에 대해선 “민간 재단이라 컨트롤하기 쉬웠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르재단은 기본재산의 비율이 낮고, 목적자산(운영재산)이 많다. 이렇게 필요충분조건을 갖춘 재단은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같은 당 오영훈 의원도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출연 재산 774억원 중 154억여원은 기본재산이고 나머지 620억여원은 경비 등으로 사용할 수 있는 운영재산으로 분류돼 일종의 비자금이 됐다”고 밝혔다.
미르재단 운영에는 외부 세력이 깊이 관여했다고 밝혔다. 미르재단이 공개적으로 채용한 인원은 2명밖에 없으며, 나머지 직원은 외부 추천으로 합류했다고 한다. 그는 “사무총장도 모르게 이사회를 열어 직위해제를 시키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불합리함을 바로잡다 쫓겨났다고 주장했다. 스웨덴 공익재단 발렌베리재단을 벤치마킹해 운영 규정을 만드는 과정에서 충돌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는 “회계 조작을 막기 위해 전산 시스템을 빨리 도입했고, 이 때문에 밉보였다”며 “누군가 재단 주인 행세를 하고 싶은데 사무총장이 말을 듣지 않으니 내보낸 것”이라고 했다. 이어 “다음 이사장과 다음 사무총장이 누가 온다는 얘기도 들린다. 나는 이용만 당한 것으로 생각된다”며 “좋은 시스템을 도입해놓고 나갈 생각이었는데, 3개월 만에 쫓겨날 줄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이 전 사무총장은 사임 후에도 안 수석, 최순실씨와 여러 차례 통화했다고 밝혔다. 그가 미르재단과 관련해 보유한 77건의 녹취(모임, 통화)가 공개될 경우 정치권은 또 한번 크게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미르재단의 주인이 누군지 이제 드러났다. (전경련의) 재단 정상화는 웃기지도 않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미르재단이 출범한 지난해 11월부터 사무총장을 지냈지만 ‘비선 실세’ 퇴출을 주장하다 해임된 것으로 알려졌다.
글=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안종범 수석과 여러번 만나 협력·기획”
입력 2016-10-22 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