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만 경찰이 21일 우울한 생일을 보냈다. 생일을 불과 이틀 앞두고 오패산터널 총격 사건이 발생해 경찰관이 숨졌다. 올해 들어서만 경찰 7명이 순직했다. 경찰이 사제 총기에 맞아 숨지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진 데다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을 둘러싼 논란도 계속되고 있다.
경찰청은 이날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박근혜 대통령, 각계 내빈, 경찰 등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71주년 경찰의 날 기념식’을 열었다. ‘국민과 함께하는 따뜻하고 믿음직한 경찰’이 주제였지만, 생일 분위기는 어느 해보다 침울했다. 식전행사로 준비됐던 인기 여자 아이돌 그룹 등의 축하공연도 취소됐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경찰의 날을 이틀 앞두고 안타깝게 순직한 김창호 경감의 영전에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인사말을 시작했다. 전국 지방경찰청과 일선 경찰서에서 마련한 각종 행사도 취소되거나 축소됐다. 경찰청은 김 경감을 추모하기 위해 영결식이 열리는 22일 오전 10시까지 전국 경찰서에 조기를 게양하고 직원들은 모두 근조 리본을 착용토록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들어 김 경감을 비롯해 7명의 경찰이 목숨을 잃었다. 2012년 16명, 2013년 20명, 2014년 14명, 지난해 15명 등 매년 15명 안팎의 경찰이 공무를 수행하다 순직하고 있다. 김 경감처럼 범인과의 격투 등 위험한 직무를 수행하다 순직하는 경우도 매년 한 명 이상 꾸준히 발생한다. 줄어드는 추세이긴 하지만, 공무 중 부상을 당한 경찰은 여전히 매년 1500명이 넘는다. 2012년 2093명, 2013년 2047명, 2014년 1974명, 지난해에는 1772명이 부상을 입었다. 올해 들어서는 지난달까지 730명의 경찰이 임무 도중 부상을 입었다.
오패산 사건을 계기로 열악한 근무환경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경찰에 보급된 방탄복은 1000여벌에 불과하다. 실탄을 쏠 수 있는 총도 두 사람당 한 정만 소지할 수 있다. 서울 일선 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찰은 “경찰의 날 하루만큼은 확실히 축제 분위기였는데 이번 일로 허탈해하는 동료가 많다”며 “오패산 사건을 보면서 터질 것이 터졌다는 생각이 들고 남의 일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백남기 농민 사망을 둘러싼 논란도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고 있다. 서울 일선서의 또 다른 경찰은 “국민과 함께하는 따뜻하고 믿음직한 경찰이 되겠다고 했는데, 백씨 일을 두고 국민들의 불신이 커진 것 같아 마음의 부담이 크다”고 말했다. 백남기 투쟁본부는 경찰의 날 기념행사가 열린 세종문화회관 앞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백씨 부검 시도 중단을 촉구했다. 투쟁본부는 “경찰이 해야 할 일은 축하나 자화자찬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성찰”이라며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
[기획] 생일날에 弔旗 단 경찰
입력 2016-10-22 0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