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부영하면 죽는다.”
고교 시절 교련시간 총검술훈련 때 교관한테 들어본 뒤 전방 근무 당시 귀에 딱지가 앉도록 고참들한테 들었던 말입니다. 이유도 잘 모른 채 어영부영하면 정말 죽는 줄 알았지요. ‘어영부영’은 뚜렷하거나 적극적인 의지 없이 되는 대로 행동하는 모양을 이르는 말입니다.
1882년 임오년에 군인들이 들고일어난 일이 있습니다. 임오군란(壬午軍亂)이지요. 군인들이 난리를 일으켰다는 것인데, 썩어빠진 군 체계에서 곪은 게 터진 것입니다. 급료 체불은 다반사였고, 모래가 섞인 곡식을 급료로 받은 군인들이 가만있을 수 있었을까요. 조정은 수구파와 개화파로 나뉘어 난장판이었고, 군율마저 엉망이었습니다. 악마의 제국주의가 침을 흘리며 노려보고 있는 줄도 모른 채.
한양의 5군영(五軍營) 가운데 군기가 제일 잘 잡혀 있어야 할 왕궁수비대 어영청(御營廳)도 엉망이긴 매일반이었나 봅니다. 御는 ‘어명’에서처럼 왕을, 營은 ‘병영’이나 ‘군사’를 이르는 글자입니다.
서울 종묘 옆 혜화경찰서가 있는 종로구 인의동에 어영청이 주둔했었는데, 백성들 눈에 흐트러진 어영청 군인들 모습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던 모양입니다. “어영은 영도 아니구먼(御營不營·어영불영).” ‘어영부영’의 연유인데, 공정하고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군의 사기가 어떻게 되는지 잘 말해주는 예라 하겠습니다.
글=서완식 어문팀장 suhws@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어영은 영도 아닌 ‘어영부영’
입력 2016-10-22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