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시간보다 약간 늦게, 어딘가에서 다른 일을 급히 보고 온 것처럼 나타난 두 사람에게선 1980년대 활동가가 연상됐다. 편하게 걸치고 나온 옷차림도 그랬지만 야무진 표정이 더욱 그런 인상을 줬다. 부부이면서도 예술적 동지인 ‘믹스라이스’. 국립현대미술관이 수여하는 2016년 올해의 작가상 수상자인 조지은(41)·양철모(39)씨를 지난 17일 수상작이 전시 중인 서울 종로구 삼청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만났다.
비주류를 자처하는 이들이 미술계의 장원급제 같은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것은 뉴스다. 조씨는 “우리는 회화, 조각, 설치 등 팔 수 있는 작품을 제작하지 않는다. 키아프(서울국제아트페어) 한 번 나가지 않았다”면서 “전시보다는 활동을 하고, 연구 프로젝트를 하고, 그런 결과가 영상, 설치, 사진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의 작가상은 최종 후보에 오른 4명에게 지원금을 주고 신작을 선보이게 해 경합시키는 방식을 취하는데, 믹스라이스가 전시장에 풀어놓은 작품들도 그런 맥락 안에 있다. 이번 작업은 재개발에 따른 이주현상을 보여주는데, 개발 중심의 한국 현대 사회 속에서 인간 뿐 아니라 식물도 공동체 붕괴현상과 자본의 논리를 증언한다. 제 땅에서 뿌리 뽑혀져 이식된 나무의 이동경로를 좇는 영상 작품 ‘덩굴 연대기’, 재개발 지역에서 채집한 각종 식물 형태를 스프레이 페인트를 사용해 본을 떠 제작한 벽화 등이 땅조차 자본화 된 현실을 환기시킨다. 땅 위에 금을 그어 표시하던 1970대식 모델하우스도 재현해 놓았다. ‘온돌방’ ‘드레스룸’ 등의 이름에서 현대화에 대한 욕망과 전통적 삶이 충돌한다.
이들의 브랜드는 이주노동자였다는 점에서 수상작은 이주의 경계 확장으로 읽힌다.
“아버지와 이모부 등이 알고 보니 다 중동으로 돈벌러 간 사람들이었습니다.”(양) “2002년 월드컵 이후 외국인 강제 출국 등이 이슈가 돼 관심을 갖게 됐어요.”(조)
두 사람은 2002년 의기투합해 ‘잡곡밥’을 뜻하는 그룹 ‘믹스라이스’를 꾸렸다. 결혼도 했다. 활동 근거지는 이주노동자가 많은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가구단지다. 2006년 이곳에서 일하는 방글라데시 출신 노동자가 연극 기획을 하면서 부부에게 참여를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이주 노동자들과 협업해 사진, 영상, 만화, 벽화, 페스티벌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조씨는 “기자들은 대상을 취재하러 가지만 저흰 10년 동안 관계를 맺어온 친구들과 작업을 하는 게 다르다”고 말했다. 공공예술축제인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에 내놓은 ‘공장의 불빛’이 그런 예다. 1970년대 전설적인 음악가 김민기씨가 연출한 동명의 음악극의 21세기 버전이다. “기륭전자, 쌍용자동차, 콜트콕텍, 동남아 이주 노동자들이 모두 출연해 노래극을 해요. 과거에는 동일방직으로 대표되는 여성노동자가 있었다면 우리 시대는 이런 노동자들이 있는 게지요.”(양)
이들의 작업은 사회적 미술이다. 한마디로 돈이 되지 않는다. “생계는 다른 일하며 해결해요. 저는 기획을 하거나 사진을 찍어주고, 지은씨는 공간 디자인을 하고요.”(양) 경원대 회화과를 졸업한 조씨는 홍익대대학원에서 사진디자인을 전공했다. 양씨는 백제예술대 사진과를 졸업하고 성공회대 사회과학부에 다시 들어갔다. 작업을 위한 문화인류학적 분석법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둘 다 주류인 서울대·홍대 출신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번 수상은 비주류의 ‘거침없는 하이킥’이다.
글=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사진=구성찬 기자
팔 수 있는 작품은 안 만든다… 비주류의 ‘거침없는 하이킥’
입력 2016-10-23 18:48